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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로교 헌법의 권징사유, 명확성 필요
죄형법정주의는 성경의 정신
황규학 (3775)
죄형법정주의
 
예장통합의 헌법을 보면 권징의 사유에 "성경상의 계명에 대한 중대한 위반행위", "총회 헌법 또는 제규정에 정해진 중대한 의무위반행위"라고 되어 있는데 이는 죄형법정주의의 내용 중의 하나인 '명확성의 원칙'에 맞지 않는 것이다. 먼저 죄형법정주의가 무엇인지 알아보도록 하자.
 
죄형법정주의란 "법률없으면 범죄없고 형벌이 없다(nullum crimen, nulla poena sine lege)는 법의 기본원리 이며 명확성은 그 내용의 일부분이다.   
 
죄형법정주의는 어떤 사람을 범죄자로 규정하고 처벌하기 위해서는 성문법의 기준과 원칙에 따라야 한다는 원리이다. 이는 국가가 위세와 권위로 국민을 다스리지 않고 법의 원칙과 기준에 따라서 다스려야 한다는 원리이다. 즉 국가형벌의 확장과 자의적 행사로부터 시민의 자유와 인권을 보장하기 위한 형법의 최고원리 이다.
 
죄형법정주의는 1215년 영국의 대헌장(Magna Charta)39조 "모든 자유인은 국법에 의하지 아니하고는 체포, 구금, 재산박탈, 법적보호박탈 추방, 투옥되지 아니한다"를 기원으로 하여 1628년의 권리청원과 1638년의 권리장전을 거쳐 1776년 버지니아 권리선언 1787년 미합중국헌법, 1789년 프랑스 인권선언, 1810년 나폴레옹 형법, 1948년 UN 일반인권선언, 1950년 유럽인권협약등에 천명되어 있다.
 
대한민국헌법 제 12조 1항에는 "모든국민은 신체의 자유를 가진다. 누구든지 법률에 의하지 아니하고는 체포, 구금, 압수 수색 또는 심문을 받지아니하며 법률과 적법한 절차에 의하지 아니하고는 처벌 보완처분 또는 강제노역을 받지 아니한다"고 규정되어 있다.
 
이러한 죄형법정주의는 성경에 이미 천명되어 있다. 로마서에 율법이 없이는 범법함이 없다고 했다. 율법이 나온 이후부터 죄가 성립되었다는 것이다. 율법은 진노를 이루게 하나니 율법이 없는 곳에는 범법도 없느니라 (롬4:15)
 
죄형법정주의는 성경의 정신과 몽테스키외의 삼권분립론이 사상적 기저를 형성한다. 몽테스키외는 법의 정신을 통하여 국가권력의 남용으로부터 국민의 자유를 보장하기 위해서 국가권력을 입법, 사법, 행정으로 분리하고, 사법부가 법을 적용하기 위해서는 입법부가 범죄와 형벌에 대해 행위이전에 미리 규정하고 있을 것을 요구하고 있다. 즉 죄형법정주의는 국민의 인권과 자유를 최대로 보장하기 위한 법규범원칙이다. 
 
 "의심스러우면 피고의 입장에 서라"
 
우리나라 판사들의 판결을 보면 주로 검사와 국가의 입장에 선다. "in dubid pro reo"는 "의심스러우면 피고의 입장에 서라"는 말이다. 즉 무죄추정원칙이다. 그러나 우리나라 법관은 법관의 자유심증주의를 최대한 남용하여 의심스러우면 피고가 아니라 경찰이나 공무원, 검사의 입장에 서는 것이 다반사이다. 특히 공안통치사회에서는 더 심했다.
 
지금도 행정소송이나 형사소송을 하면 판사들은 거의 국가편에 선다. 증거가 분명하지 않으면 피고편에 서야 하는데 추정적 판단을 하여 검사나 국가편에 서는 경우가 많은 것이다. 이는 여전히 사법의 민주화가 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러다 보면 억울하고 누명을 쓴 사람들이 많이 나오게 되고, 유전무죄, 무전유죄의 소리가 끊임없이 울려퍼지게 되는 것이다.
 
죄형법정주의는 국가로부터 국민의 자유와 인권을 보장
 
따라서 죄형법정주의는 국가의 권위에 의한 판단이 아니라 법리에 입각한 판단을 해서 국민의 자유와 인권을 최대한 보장하기 위한 민주주의의 원칙으로 판사의 자유심증주의원칙에 따라 법리가 아니라 판사의 권위에 따라 판단하는 경우를 제재하는 원칙이다. 판사는 자유심증주의라는 원칙으로 법관의 권한남용으로 흐를 수 있는 여지가 충분히 있다. 검사는 기소독점주의로 기소남용으로 흐르게 된다. 그러므로 법이 규정하지 않은 부분들은 추정적 판단이 아니라 죄형법정주의, 무죄추정원칙, "의심스러우면 피고편에 서라"는 등의 법규범에 입각한 판단이 필요한 것이다.
 
죄형법정주의에는 소급효금지원칙, 관습법금지원칙, 명확성의 원칙, 유추해석금지원칙, 적정성의 원칙이 있다. 소급효금지원칙은 형법법규가 시행 이후에 행해진 행위에 대해서만 적용되고 시행이전의 행위까지 소급하여 적용될 수 없다는 원칙이다.
 
감리교회 김국도 목사의 사건 마찬가지이다. 김국도목사는 1998년 명예훼손으로 100만원 벌금을 받았는데, 2,001년에 만들어진 "사회법에서 재판받은 사람은 피선거권이 없다"는 조항으로 소급되어 감독회장당선이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사회법정으로부터  후보자등록취소가 된 것이다. 엉터리 판결이다. 서울중앙지방법원이 법리에 의한 판단이 아니라 권위에 의한 판단을 했기 때문이다. 
 
이는 참정권에 있어서 소급효금지원칙에 어긋난 판결이다. 죄형법정주의는 국가나 판사들의 권위에 의한 판단을 막는 법의 대원칙이다.  법원에 가면 판사들의 권위나 잘못된 법해석, 잘못된 증거채택, 추정적 판단이 판사의 자유심증주의에 가려지게 되는 것이다. 법관의 자유심증주의는 법관의 죄악과 실수를 법의 이름으로 정당화시켜주는 것이다. 검사의 기소독점주의도 마찬가지 이다. 기소남용주의아 기소독점주의가 구별되지 않는다. 기소독점주의, 기소남용주의는 결국 스펀서 검사로 전락하게 되는 것이다.  법관의 이름으로 그들의 죄악이 가려지게 되는 것이다.  
 
교단헌법, 죄형법정주의의 명확성 필요
 
그렇기 때문에 특히 법을 작용하기 위해서는 죄형법정주의에 입각한 명확성이 있어야 한다. 하틀러치하의 나찍독일의 법을 보면 "국민의 건전한 감정을 해치는 자는 처벌한다"는 조항이 있다. 명확하지 않고 모호한 조항이다. 우리나라 대법원이나 헌재도 명확성을 요구한다.
 
우리나라의 대법원의 판례를 보면 "외환관리규정 제6-15조의 4 제 2호(나)목의 소정의 '도박 기타 범죄 등 선량한 풍속 및 사회질서에 반하는 행위'라는 요건은 이를 한정할 합리적인 기준이 없다면, 형벌법규의 규성요건 요소로서는 지나치게광범위하고 불명확하다고할 것인인데, 외국환 관리에 관한 법령의 입법목적이나 그 전체적 내용, 구조 등을 살펴보아도 사물의 변별 능력을 제대로 갖춘 일반인의 이해와 판단으로서도 그 구성요소에 해당하는 행위유형을 정형화하거나 한정할 합리적 해석기준을 찾기 어려우므로 죄형법정주의가 요구하는 형법법규의 명확성의 원칙에 반한다"<대판 1998. 6. 18, 97도2231 (선량한 풍속및 사회질서에 반하는 행위의 불명확성)>   
 
또한 관리개념의 불명확성을 판정한 헌재의 판례를 보면 "정부관리 기업체의 관리직원은 이를 공무원으로 본다는 구정에서 '관리'라는 용어는 정부가 어떤 목적과 법적 근거에서, 어떤 사항에 대하여 어떤 내용과 정도의 관리를 함을 의미하는지를 가늠할 수가 없는 지나치게 추상적이고 광범위한 구성요건으로서 명확성의 원칙에 반한다"고 되어있다<헌재, 1995. 9. 28, 93헌바50 <'관리'개념의 불명확성> 
 
교단에서도 재판을 할 때도 명확성이 요구된다.교단재판은 법령이 구체적이지 않고 적용법규정이 적다보니 법리가 아니라 교단재판국의 권위로 재판할 때가 많이 있다. 그러다보면 피고는 교인의 자유와 인권이 보장이 안된 상태에서 불이익을 당하는 경우가 부지기수이다. 
 
권징의 사유도 "성경상의 계명에 대한 중대한 위반행위", "총회 헌법 또는 제규정에 정해진 중대한 의무위반 행위"라고 한다면 모든 사람들에게 다 해당하는 것이기 때문에 불명확하고 추상적이고 지나치게 광범위한 개념으로 모호한 개념이다. 성경도 죄형법정주의를 제시하고 있기 때문에 이러한 모호한 권징사유는 성경의 정신에 위반된 행위이다. 따라서 두 조항은 보다 구체적이고 명확한 조항으로 규정할 필요가 있다.  명확하지 않으면 법리가 아니라 법훈련도 제대로 받지 않은 비전문가인 재판국원들의 위세와 권위로 판결하기 때문이다. 그러다보면 억울하고 속상한 일이 다반사로 일어나게 되는 것이다. 권징은 사실상 신도들에게는 형벌에 해당하는 것이기 때문에 죄형법정주의라는 형벌의 원칙상 명확성을 띠어야 한다.
 
양형도 변화되어야
 
형벌에 있어서도 견책, 수찬정지, 시무정지, 면직, 출교만 할 것이 아니라 권징의 목적상 회개하여 새사람이 되게 하기 위한 것이기 때문에 천주교처럼 참회성, 고해성 징벌로서 사회봉사라든가 기도원에서 7주일 기도, 3일 금식, 심방 한달 금지, 설교 두 달 금지 등 다시 갱생할 수 있는 길을 주어야 하는데 무조건 면직, 출교를 시킨다면 권징의 목적에 위반하는 것이다. 이와같이 권징의 사유에 있어서 보다 명확성을 띠어야 하고, 양형에 있어서 보다 구체적이고 참회성 징벌을 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재판국원들의 윤리지침 필요 
 
또한 재판국이 권이를 얻기 위해서 교단헌법에 재판국원들의 윤리지침이 추가되어야 하거나 자체 윤리규정을 만들어야 하고, 나아가 사회법정보다 권위있는 교단법정이 되기 위해서 노회재판국원을 비롯한 총회재판국원들의 훈련이 있어야 할 것이다.
 
재판국원들 훈련 필요
 
예장통합교단은 훈련원이 있기 때문에 다른 훈련도 필요하지만 재판국원들, 헌법해석위 위원들이 교단법조인으로서 재판을 바로 할 수 있도록 기본적인 법원칙과 법해석의 원칙을 훈련시켜야 할 것이다. 교단법정이 투명하고 공평하며 재판국의 권위가 아니라 법리에 입각하여 판단할 때, 사회법정의 소송의 남용을 막을 수 있다. 교단사법부가 제대로 서야만 총회가 바로 설 수 있을 것이다.
 
교단법정 권위 높여야
 
사회법정에서 아무리 전과자라고 할지라도 참회하고 회개하는 기색이 있고 억울한 상황이라고 판단되면 교단법정은 무죄라고 과감하게 신앙적인 판단을 할수 있을 정도로 권위가 있어야 할 것이다. 특히 사회법정에 소송을 남용하는 자들에 대해 중형을 내려 세상법정에 호소하지 않도록 해야하며, 세상법정에 호소하는 것이 수치스럽게 될 정도로 교단법정의 권위를 높여야 할 것이다.           
 
따라서 교단은 하나님의 형상을 가진 신도들이나 목회자들에 대한 자유와 인권을 최대한 보장하기 위해서 노회나 총회 재판국의 권위가 아니라 법리와 죄형법정주의 원칙하에서 판단할 수 있도록 권징법규의 모호성을 명확성으로 변경. 수정할 필요가 있다. 나아가 재판국원들의 윤리지침을 규정하고, 교단법조인을 위한 훈련시스템이 필요하다. 그래야만 교단의 법정이 신앙적 치리적 권위를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 길만이 신도들이 세상법정에 소송을 남용하는 것을 막는 길이 아닐까?  
 



 
기사입력: 2010/09/30 [03:34]  최종편집: ⓒ lawnchurc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