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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법개정, 권징편도 개정 필요
대륙법체계를 따를지, 영미법체계를 따를지 먼저 고민해야
전재홍 (9600)
오늘날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는 다양화, 전문화 내지 세분화 되어있고 그러면서 매우 복잡한 형태를 띠고 있을 뿐만 아니라 시대의 가치가 하루하루 급변하고 있다. 이 종잡을 수 없는 현실의 흐름 속에서 더 이상 지팡이나 막대기를 들고 양떼나, 소떼를 몰고 다니는 방식으로 교회를 운영할 수 없는 시대가 되었다.

 우리의 목양지도 변해가고 있다. 교인들의 의식 수준과 함께 학력이 높아지고 지적 수준도 그만큼 높아졌다. 교회 운영에 평신도들이 참여하기를 바라고 있고, 평신도들이 불합리하게 교회를 운영하는 것을 용납하지 않는 것이 현실이다.

지금 교단 산하 교회들이 몸살을 앓고 있다. 분쟁과 분규, 갈등과 반목을 넘어 해체되는 교회들이 속출하고 있고, 서서히 교회는 영향력을 잃고 공멸하는 과정을 거치고 있는 상태이다.
 
교회가 왜 이런 몸살을 앓고 있는가?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가장 큰 이유는 우리가 가지고 있는 법의 한계와 문제점 때문이라고 지적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지구상에 존재하는 법은 크게 두 가지 형태를 따르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영미법 체계’와 ‘대륙법 체계’인데 우리 교단법은 ‘영미법’ 형태를 띤 ‘미국 장로교법’을 그대로 번역해서 사용하다가 최근 개정한 우리 교단의 헌법은 ‘대륙법 체계’인 형법 체계를 어설프게 가지고 왔다.

이 어정쩡한 상태의 법이 교회를 혼란스럽게 하고, 우리나라 헌법에 보장된 종교의 자유와 신성불가침들이 여지없이 무너지고 있으며, 신성한 교회의 대표마저도 법원이 정해주는 결과까지 초래하게 되었다.

국가가 보장해 준 신성한 종교의 자유를 우리 교단은 애써 헌납한 상태이고, 하나님의 심판보다도 세상 법정의 심판을 더 존중하고 선호하는 꼴이 되어 버렸다.
 
왜 신성한 교회의 문제를 세상의 법정으로 가지고 가는가? 이유는 간단하다 교회의 법으로 시시비비가 가려지지 않기 때문이다. 시비를 가릴 수 없는 법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오늘날 교회는 문제를 낳고 그 문제를 기르고 있는 셈이다. 이제 머잖아 장성한 문제들이 교회를 마비시키게 될 지도 모른다.
 
늦었지만 우리 교단도 교단 헌법을 개정해야 한다는 인식과 함께 법 개정의 움직임이 있어서 다행스럽게 생각한다. 해서 조심스럽게 교단에 몇 가지 제안한다. 먼저 법을 개정 하려면 우리 교단의 법을 어떤 형태, 어떤 체계로 할 것인가를 분명히 해야 한다.

영미법체계, or  대륙법체계 선택해야
 
 ‘영미법 체계‘를 따르려면 빠른 시간 내에 각 노회, 총회재판국의 판례집을 만들고 판례에 따라 재판하는 형태를 만들어야 함은 물론이고, 배심원제도를 도입해야 한다. 하지만 ’영미법 체계‘를 따르려면 재판하는 국원이나 법을 가지고 목회를 해야 하는 목회자들의 법적 소양이 더 높아져야 하는 문제가 발생한다.

첫째, 대륙법체계라면 죄형법정주의 원칙 지켜야

 ‘대륙법 체계’를 따르려면 엄격한 ‘죄형법정주의의 원칙’을 따라야 한다. 무엇이 범죄이며 그 범죄행위에 대해서 어떤 형벌이 과해지는지에 대하여 범죄행위 이전에 미리 성문화된 법률에 의해 규정되어 있어야한다. 법률주의, 범죄와 형벌을 규정한 형벌 법규는 그 시행 이후의 행위에 대해서만 적용되고 그 시행 이전의 행위에 소급하여서는 안 된다는 ‘소급효의 금지원칙’, 법문의 가능한 의미의 범위를 넘어서 명시되지 아니한 유사한 사실까지 법문을 적용해서는 안 된다는 ‘유추해석 금지의 원칙’이 지켜져야 한다.

단지 범죄와 형벌이 미리 법률에 규정되어 있는 것만으로 부족하고 성도가 무엇이 금지되고 허용되는지 예측 가능할 정도로 명확하게 기술되어야 하며, 형벌의 종류와 형벌의 양까지도 명확해야 한다는 ‘명확성의 원칙’을 지켜야 한다.
 
또한 범죄와 형벌을 규정한 법률은 기본적 인권을 실질적으로 보장할 수 있도록 그 내용이 적정해야 한다. 처벌의 필요불가결성에 근거하는 형벌이라 하더라도 범죄와 형벌의 균형을 잃고 있거나 형벌의 내용이 잔혹하다면 명확성에 위반되는 것이다. 따라서 죄형법정주의원칙이 철저하게 지켜지는 법을 만들어야 한다.
 
둘째 법의 형태를 세분화해야 한다.
 
지금의 법은 ‘정치’와 ‘권징’으로만 구성되어 있어 말 자체만 들어서는 이게 무슨 말인지, 무엇을 뜻하는지 도무지 알 수 없고, 이 두 법안에 모든 법이 뒤엉킨 형태를 띄고 있어 세분화 할 필요가 있다.

우리 교회법의 ‘권징’은 형법의 성격을 가지고 있으나, 죄형법정주의 원칙을 따르고 있지 않아 범죄와 형벌이 명확하지 않고, 동일한 범죄에 대해서 동일한 양형을 기대하기란 매우 어렵고, 형벌이 명확히 규정되지 않은 헌법체계의 ‘권징’으로는 재판하기가 쉽지 않다 하겠다. 

우리교회 재판은 민·형 복합적인 재판, 행정, 선거 등 다양한 성격의 재판이 혼용되어있고 법조문으로 명확하지 않거나, 적용할 법이 불비한 상황에서 재판해야 되는 경우이기 때문에 쉽지 않은 재판이 진행될 수밖에 없다. 그리하여 새롭게 개정될 법은 헌법, 행정법, 소송법, 권징(형법), 재산법 등으로 분류해야 한다. 
 
셋째 법을 개정하는 위원들은 모두 법적인 전문식견이 있는 자로 한정해야 한다.
 
각 법의 전문지식이 있는 교단의 인재를 발굴해서 개정에 참여하게 해야 한다. 한 두 사람에 의해서 개정 되어지는 법은 지금의 형태에서 벗어날 수 없다. 이미 우리 교단 안에는 평생을 법조계에서 활동하신 전문 지식인이 많이 있고, 신학과 법학을 공부한 준비된 인재들이 많이 있다. 이 인재들을 법 개정에 참여시켜야 한다.
 
넷째 지금 교회 분쟁의 형태를 보면 재산문제, 행정문제, 인사문제가 대부분이다. 
 
목회자의 청빙처는 지교회인데 지교회에서는 목회자의 해임이 어렵거나, 위임이 된 상태에서는 사실상 해임을 할 수 없게 되어 있어 혼란이 오는 경우가 많다. 장기 집권이나 독재가 되어버린 권력은 썩기 마련이다. 철밥통이 되어버린 목회자의 지위는 개혁교회의 정신을 역행할 수 있다. 당회원도 마찬가지다. 그리하여 이번에 개정될 법은 총회장, 노회장, 당회장의 권한과 한계를 명확히 해야 하며, 교회가 당회장이나 당회원을 해임을 할 수 있는 법적 근거를 마련해야 한다. 
 
다섯째 총회는 변호인을 양성해야 하고 변호인 자격증을 부여해야 한다.
 
현재의 법체계 속에서는 변호인이 오히려 피고의 권익에 엄청난 침해를 가져오게 되어있다.피고가 불출석 할 경우에 변호인만 세우면 어떤 벌이라도 부과할 수 있게 되어 있고, 법적인 전문지식을 가진 변호인이 없기 때문에 힘의 논리를 따를 수밖에 없어 엄청난 로비가 필요하게 된다. 일반교회에서는 어떤 사람이 법을 잘 아는 지 알 길이 없기 때문에 총회는 변호인을 양성하고 변호인을 공적으로 공개함으로 양질의 변호를 받을 권리를 교회에 제공해야 한다.
 
여섯째 재판을 받을 권리를 제한해서는 안 된다.
 
이 세상, 그 어떤 곳에서도 재판비용을 예납하고, 재판을 받는 경우는 법치주의를 천명하는 곳이라면 결코 존재하지 않는다. 돈이 없으면 아무리 억울한 일을 당해도 재판을 받을 수 없다는 것이 말이 되는가? 가장 민주적이며 가장 합리적이고, 사회를 개혁하고 선도해야 할 교회가 비합리적이고, 무법적인 부끄러움을 자행하고 있는 것이 작금의 현실이다.

돈 없으면 재판을 받지 마라. 돈 있고 힘 있는 자만 재판 받을 권리를 부여하는 곳이 또 어디에 있을까? 당회장이나 노회장 ,총회장은 재판비용을 예납하지 않아도 얼마든지 재판을 받을 수 있지만, 힘없는 사람은 그냥 억울하게 당해야 되는 것이 현실이다. 또한 당회재판에서 총회특별심까지 재판에 드는 비용과 실비라도 변호인을 선임해서 변호비를 지불해야 한다면, 지금 법체계 속에서 재판이 끝날 때까지 드는 비용이 약 1,000만 원 정도가 발생하게 된다. 따라서 재판비용을 예납해야 하는 악법은 당연히 폐지되어야 한다.
 
일곱째 총회는 “‘교회법연수원’을 만들어 총회재판국 국원이나, 변호인이 되고자 하는 자는 교회법연수원을 수료한 자에 한해서 하자.”는 견해에 적극 동의한다.
 
사법연수원 형태의 ‘교회법연수원’ 제도의 정착이 필요하다는 데는 이의가 없지만 더 나아가서 연수원 기능을 다양하게 활용해야 한다. 총회 산하 ‘교회법연수원’이 만들어진다면 총회나 노회재판국의 재판의 실무교육을 담당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
 
적어도 일 년에 한번 정도는 모의재판을 통해서 재판의 실제적 교육을 시킬 필요가 있다. 판결문작성법, 고소장, 기소장작성법 등 소송절차에 관한 일체를 교육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교회법연수원’에서는 각 당회나, 노회, 총회재판국에서 확정된 판결문들을 수집해서 판례집을 만들어 자료화해야 한다. 현재 교단 내에서 확정된 판결문이 나오면 검증할 기관이 없어 판결문이 유출될 경우 교단의 명예를 실추시킬 우려가 매우 높기 때문에 연수원에서 판결문을 평석할 필요가 있고, 오류가 있을 때에는 재심청원이나 판결문 정정을 건의할 필요가 있다. 

 ‘교회법연수원’을 설립하여 유용하게 활용한다면 전문 법지식인의 양성은 물론이며 법치주의가 완벽하게 실현될 수 있고, 제대로 된 법해석과 법적용이 될 것으로 기대 된다. 여덟째 현재의 ‘권징’을 보면, 권징이 솜방망이에 불과해서 두려워하지 않는다. ‘면직’, ‘출교’가 되어도 얼마든지 교인들만 지지하면 실질적으로 목회하는 데 있어서 문제가 되지 않는다.
 
따라서 직원에 관한 벌 가운데서 감봉 내지 연금의 삭감 또는 연금 받을 자격을 박탈하는 조항을 검토 하는 등 실질적으로 엄격한 벌을 가할 수 있는 법 제정을 건의한다.
 
아홉째 ‘총회특별재심제도’를 폐지해야 한다.

우리교회법은 소송법에 문제가 있다. 단심제도로 끝내는 재판이 있고 실제적으로  삼심제도를 넘어서 사심, 오심까지 가는 이상한 형태의 재판도 있어, 정치적 논리와 힘의 논리에 의해서 얼마든지 재판의 결과가 뒤집어지는 초·탈법적 형태의 체제를 가지고 있다.
‘총회특별심’이 필요치 않는 것은 얼마든지 ‘재심제도’를 통해서 보완할 수 있기 때문에 ‘총회특별심제도’는 폐지되어야 한다. 
 
열 번째 실제적으로 총회헌법의 개정이 쉽지 않기 때문에 총회 때마다 헌법시행규정을 만들어서 헌법을 개정해왔으나 시행규정이 모법(母法)을 제한하는 누를 범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앞으로 시행규정이 필요치 않는 법을 개정해야 하고, 특별법을 제정하든지 아니면 입법발의를 할 수 있는 길을 열어두어야 할 것이다.
      
열한 번째 ‘헌법위원회’는 ‘헌법재판소’ 형태로 바꾸어야  한다. 

‘헌법위원회’의 해석이 해마다, 사람마다 다르게 해석됨으로 교회의 문제를 야기시키고, ‘헌법위원회’의 해석과 달리 실제로 재판에 있어 법이 다르게 해석되며 적용됨으로 두 기관이 충돌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따라서 헌법의 해석은 당해 ‘총회재판국’이 하게 되면 불필요한 재판을 줄이게 되는 효과를 얻을 수 있다. ‘헌법위원회’는 헌법을 해석할 것이 아니라 각 교회의 내규, 노회의 규칙들이 위헌의 소지가 있는지를 규명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
 
열두 번째 시대에 맞지 않은 불필요한 법을 삭제해야 한다.

예를 들면 당회록 검사, 노회록 검사는 문맹률이 낮은 시대에는 지도가 필요했지만, 지금에는 지도를 받아야 할 만큼 지적 수준이 낮지 않다. 당회록이나 노회록의 검사는 교회 모든 역사와 비밀이 들어 있기 때문에 이 당회록을 공개함으로 오히려 교회와 노회에 누가 되는 경우가 발생 할 우려가 많고, 내정 간섭이라는 인식까지 주고 있어 이 조항을 삭제하는 것이 타당하다. 따라서 지금 현실에 맞는 법의 제정과 개정이 필요하다.
 
열세 번째 재판하지 않고는 권징 할 수 없다는 ‘권징의 대전제’가 ‘수습전권위원회’의 결정에 의해서 여지없이 무너지고 있다.
 
재판을 받을 권리가 박탈되고, ‘수습전권위원회’의 결정에 의해서 권한이 제한되는 경우는 그 어떤 이유로도 정당화 될 수 없다. 따라서 합법적인 가처분 소송제도가 도입되어야 한다. 시급을 다투는 문제를 가처분 소송으로 결정하지 못하기 때문에 사회법정으로 가게 되고 법정신에 맞지 않는 불필요한 ‘수습전권위원회’가 만들어져 위법적인 결정을 함으로써 제2, 제3의 피해를 보게 할 뿐만 아니라 법치주의가 무너지게 된다.
 
끝으로 이 세상을 다스리고 있는 것은 무엇일까? 엄격히 말하면 그것은 하나님의 법이다. 하나님의 법에 의해서 이 세상은 다스려지고 있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나라의 법의 근간은 성경이다. 독재자의 나라건 공산주의건, 그 법의 근간은 성경이다. 그런데 교회와 성도가 성경을 위배하고 하나님의 법을 거부하는 것이 있을 수 있는 일인가? 성경의 계명을 위반 하는 자는 반드시 처벌하는 규정을 두어야 한다. 개정 될 법은 적어도 십계명, 성경상의 중대한 규정, 교회의 전통을 위반하는 경우에는 엄격하게 처벌하는 규정을 두어야 한다.
 
앞에서 열거한 건의사항 외에도 개정되어야 할 부분이 많이 있고, 새로운 법을 기대하는 사람들이 많다. 이왕 법을 만들 바에는 다른 교단에게 모델이 되는 법을 만들기 바라고, 모두의 기대에 부응하는 법을 만들어서 교회의 안녕과 발전에 기여하고 하나님의 공의를 드러내는 제대로 된 법 개정이 되기를 소망한다.
 
                                                  
전재홍목사는 경주사방교회에서 목회하고, 현재 총회재판국 제 1분과장이다. 숭실대와 대구카톨릭대학에서 형법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교회법연수원 연구원 이다.  


 
기사입력: 2011/02/07 [08:05]  최종편집: ⓒ lawnchurc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