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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2년 냉전시대 미국대법원, 좌우이념을 초월하여 판단
. Beyond A and B 사관 필요, 종교와 사상의 가치는 국가의 권위와 이념의 장벽까지 초월해야
법과 교회 (4433)
얼마 전 한국에서는 이석기 의원은 법원으로부터 내란음모죄로 중형을 선고받았다. 현재는 한국사의 국정 교과서 채택여부로 인한 좌우 이념 문제로 국론이 분열되어 있는 상태이다. 여전히 이념의 장벽이 한국을 가로막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미국은 소련과 첨예한 냉전관계에 있었던 1952년에 이념의 장벽을 넘어선 판결을 했다. 1952년은 메카시즘 열풍이 있었던 시기이기도 하다.

매카시즘(영어: McCarthyism)은 1950~1954년 미국을 휩쓴 공산주의자 색출 열풍을 말한다. "대부분의 경우 공산주의자와 관련이 없었지만, 많은 사람들이 블랙리스트에 오르거나 직업을 잃었다" 고 정의하고 있다.

법이란 것은 정치와 사상과 이념의  장벽을  넘어서야 하지만 한국의 법은 여전히 이념 아래 있다. 북한과의 대치때문에 국가보안법이 폐지되지 않고 있다. 한국사 역시 이념의 장벽을 넘지 못해서 계속 좌우 충돌을 하고 있다. 북한사관문제로 인해 계속 대립하고 있다.

미국 대법원은 냉전시대에 미국에 있는 러시아정교회가 신도들끼리 재산 분쟁이 있을 때 소련의 교회재산관할권을 인정했다. 당대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판결이었다. 법원이 우선 이념의 장벽을 넘어섰던 것이다. 

1952년 미국 뉴욕 러시아정교회에 재산분쟁이 발생했다. 당시 미국법원은 러시아에 있는 러시아정교회의 재산권을 인정했다. 우리나라 같은 경우 북한 봉수교회 교인이 한국에 교회를 세웠는데 법적인 재산상의 문제가 발생할 경우, 법원이 북한 봉수교회의 관할권을 인정한 것과 같은 사례일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판결은 한국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것이다.

케도르프 사건
 
케도르프 사건(Kedroff v. St. Nicholas Cathedral)은 이념의 장벽을 넘어선 사건으로 종교에 대한 관할권을 중시한 전형적인 교단존중에 입각한 사건이다. 냉전시대에 미국이 소련 공산국가의 교단을 인정한 사건이다.
 
뉴욕주는 모스크바에서 온교회라 할지라도 미국안에 있다면 미국이 통제한다는 법을 통과시켰다. 뉴욕주의회는 종교법인법을 개정하면서 뉴욕주에 있는 러시아정교회의 지교회는 미국러시아 정교회의 치리를 승인하고 복종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뉴욕주대법원도 뉴욕주법에 따라 성니콜라우스 대성당은 미국러시아정교회의 교회법에 따라 관리되어야 한다고 판결했다. 그러나 소련에 있는 당시 모스크바정교회는 자신들이 관리해야한다고 판단했다. 케도로프는 소련측의 소송상 대표자 였다.
 
연방대법원은 뉴욕주대법원의 결정을 파기하고 소련교회가 임명한 대주교 케도르프에게 니콜라우스 대성당의 점유권이 있다고 판단하였다. Reed 대법관은 뉴욕주가 수정헌법, 제 1조와 제 14조를 위반하는 것이라고 판결하였다. 
  
이 사건은 냉전시대에 발생한 첨예한 정치적인 사건임에도 불구하고 미국연방대법원은 정치성을 띠기 보다는 수정헌법에 토대하여 종교으ㅟ 가치를 우선한 판결이었다.

왓슨사건(Watson v. Jones)은 수정헌법에 입각하여 교회와 국가를 분리해서 교회의 가치를 중시한 사건이고,  케도르프 사건은 종교적 결사의 자유, 교리와 신앙의 자유는 국가의 이념과 국경으로부터 벗어나 자유로와야 한다는 것을 보여준 사건이다. 
 
Watson v. Jonne사건이 국내의 정치성으로부터 벗어난 사건이라면 Kedroff v. St. Nicholas Cathedral사건은 국제의 정치성으로부터 벗어난 사건이다. 그만큼 미국 연방대법원은 수정헌법 1조에 근거하여 국내이든, 세계든 종교의 가치질서는 이념과 국경, 정치의 장벽를 넘어선다는 것을 보여주었던 것이다.  이 사건은 교단의 헌법을 존중했다기 보다는 국경을 넘어서 교단최고치리회의 결정을 존중했다. 
        
대법관 Reed는 뉴욕주 법은 종교를 자유롭게 수행해야 하는 종교인의 권리를 제한함으로서 수정헌법 14조를 위반했다고 판단했다. 그는 교회는 신앙, 교리, 예배, 성만찬, 권징, 교회법, 동방교회의 신앙고백을 유지해야 한다며 이러한 것들이 니콜라스 성당의 회원에 대한 어떤 신념을 부과하는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한국법원은 각교단의 주장이나 교단헌법, 교단의 자율적인 결정을 인정하지 않고 모든 것을 법원이 개입하여 판단을 한다. 종교와 국가간의 엄격한 분리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교단의 결정을 인정하지 않고 미주일 고주알 법원이 개입하고 있다. 종교라는 것은 이념과 국경을 초월하는 것이다.
 
한국은 북한의 봉수교회출신이 봉수교회의 자금을 갖고 개척을 해서 재산분쟁이 발생했을 경우, 과연 법원이 봉수교회의 편에 설 수 있을 것인가? 상상하기 어려운 질문일 것이다. 한국의 법원은 종교의 문제라고 하더라도 이념을 초월하지 못할 것이다.

 both A and B에서  beyond A and B로 나가야

순수한 종교적 시각으로 접근하기 보다는 분단의 시각이나 국가의 안보시각에서 접근하여 정치적으로 판단할 것이다. 역사나 사상 문제 있어서도 이제 한국은 좌우이념의 장벽을 초윌할 때가 왔다. 극좌와 극우는 민족통일에 전혀 도움이 되질 않는다. 미래를 위해서 극우파는 젊은이들의 혁신과 진보의 정신을 용인해야 한다. 극좌는 극우파의 정신을 수용할 수 있는 용기가 있어야 한다. 그래야만 극우와 극좌를 초월할 수 있는 것이다. 지금 서로 날카롭게 대립하는 이유는 both A and B이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는 both A and B에서  beyond A and B로 나가야 할 것이다. 
 
한국은 지금도 여전히 순수종교의 가치나 사상의 가치가 한반도라는 분단의식의 가치를 넘어서지 못한다. 아무리 종교인이라할지라도 분단의 가치에 종속되고 만다. 그러다 보니 사상까지 국가가 통제하려고 하는 것이다.

종교의 문제를 분단의가치나 국가적인 시각갖고서 접근하다보면 종교의 자율성이 상실되고 국가의 힘이 기준이 되어 중국기독교처럼 종교란 단지 국가의 종속적인 하부활동에 불과하게 되는 것이다. 국사나 사상의 문제 역시 국가가 통제하다 보면 사상의 자유로움이 퇴보하거나 국민들의 저항을 불러 일으킨다. 영국이나 프랑스, 미국의 혁명은 국가가 종교나 사상의 자유를 제한하거나 통제했기 때문에 일어난 것이다. 근현대역사 이후의 혁명은 대부분 개인권리의 자유를 제한했기 때문에 발생한 것이다.   

장로교단헌법 정치편 2조에 교회의 자유가 있지만 한국에서는 교회의 자유가 지켜지지를 않고 법원의 결정의 자유만 지켜질 뿐이다.
 
이미 교회의 자유에 대해서는 영국의 청교도들이  지금부터 약 400여년전에 국가에 대해서 개인신앙양심의 자유와 교회의 자유를 추구했었다. 그것이 유명한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 20장이다. 장로교헌법에는 제1조 양심의 자유로 채택되고 있다.  
 
 제1조 양심의 자유
양심을 주재하는 이는 하나님뿐이시다. 그가 각인에게 양심의 자유를 주어 신앙과 예배에 대하여 성경에 위반하거나 지나친 교훈이나 명령을 받지 않게 하였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신앙에 대하여 속박을 받지 않고 그 양심대로 할 권리가 있으니 아무도 남의 양심의 자유를 침해하지 못한다. 
 
제2조 교회의 자유
개인에게 양심의 자유가 있는 것 같이 어떤 교파 또는 어떤 교회든지 교인의 입회 규칙, 세례교인(입교인) 및 직원의 자격, 교회의 정치 조직을 예수 그리스도께서 정하신 대로 설정할 자유권이 있다. 

 
한국은 교단헌법에 국가에 대한 개인 신앙양심의 자유와 교회의 자유가 규정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들의 양심의 권리를 쉽게 포기하고 있다. 나아가 한국은 언론 출판 결사의 자유와 사상의 자유가 있 음에도 자신의 양심과 사상의 관리를 쉽게 포기하는 경향이 있다. 국가가 국민들의 사상의 자유를 통제할 때 국민들은 저항성을 띠게되는 것이다.

그것이 조금 진보적이거나 극단적이라 할지라도 국가안보에 위협이 되지 않는다면 그 사상은 존중되어야 한다. 역사는 보편에서 개체로, 보수에서 진보로, 독재에서 민주로 흐르고 있다. 진보의 물결을 보수가, 민주화의 물결을 독재 정권이 거스릴 수 없다. 역사는 퇴보하지 않는다. 1950년대 초기 미국도 공산주의의 열풍이 있었다.

우리나라는 독재정권시절 '반공'이 메카시즘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메카시즘의 악령이 여전히 계속 하고 있어 국론의 분열을 획책하고 있다. 사실에 의한 역사왜곡이라든지, 해석에 의한 역사왜곡이 있어서는 안될 것이다. 이제는 3만불시대를 맞이하여 좌우이념을 초월한 역사해석이 있어야 할 것이다. Beyond A and B가 필요할 때이다. 그래야만 통일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기사입력: 2015/11/09 [05:16]  최종편집: ⓒ lawnchurc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