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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로교단 헌법(정치편), 개정되어야 한다.
정치편의 '원리'부터 개정되어야
법과 교회 (4758)
1. 교회 헌법(정치편), 전면 개정 되어야 한다. 
    
1884년에 시작된 한국 장로교의 역사는 이미 한 세기를 상회했고 장로교회 헌법의 역사는 몇 년 남겨두지 않은 채 한 세기를 향하여 다가가고 있다. 교회가 있는 곳에는 항시 헌법이 있기 마련이다.

칼빈과 낙스는 종교개혁 운동을 하면서 교회의 질서를 부여하고자 교회 헌법을 우선 작성하였다. 이것이 오늘날 우리가 사용하는 장로교 헌법의 효시인 것이다. 교회 및 교단의 헌법은 예나 지금이나 그 교회나 교단의 정체성을 드러내는 것으로 성경에 기초하여 당시의 시대를 반영하는 역사성과 사회성이외에 교리를 위주로 하는 신학성까지 포함해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 특정교단의 헌법을 보면 그 교단의 신학적 성향과 교단의 특성과 방향성, 사회에 대한 관계를 미루어 알 수 있는 것이다.

현재 한국장로교단의 헌법은 1922년에 완성된 헌법이 지금까지 계속 개정되고 첨가된 것으로 정치, 권징조례는 북장로교에 가깝고, 예배모범은 남장로교에 가깝다. 그만큼 선교사들과 보수신학자들의 도움으로 미장로교단 헌법의 영향을 강력하게 부여받은 것이다. 특히 신앙고백면에 있어서는 역사와 상황을 달리할지라도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이 사실상 우리의 신앙고백이었다. 다행히도 통합측 교단은 1986년에 완성된 자체의 신앙고백과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을 동시에 받아들이고 있고 합동측은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만을 신앙고백으로서 채택하고 있으며 기장측은 1972년 발표된 자체의 신앙고백만을 채택하고 있다.

칼빈의 기독교 강요가 장로교 교리를 체계화 했고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이 기존의 신앙고백과 교리, 교회 헌법을 체계화한 불후의 산물이지만 장로교의 역사가 100년을 지난 우리로서는 우리가 경험해왔던 독특한 사회적 정황과 역사를 반영한 우리의 신앙고백이 필요했던 것이다. 뿐만 아니라 이제는 우리민족의 교회 정치문화와 사회상을 반영한 우리의 실정에 맞는 교회 정치와 권징에 대한 헌법이 필요한 것이다.

한국 장로교단의 헌법은 본질적으로 미장로교단 헌법의 형틀에서 쓰여 졌기 때문에 신앙고백뿐만 아니라 교회 정치나 권징은 미장로교단 헌법의 외형적 골격으로 되어있다. 미장로교단 헌법은 1789년 헌법이 만들어진 이후 빈번한 교단의 분립과 통합과정에서 꾸준한 연구와 발전으로 신학과 역사와 시대적 정황을 골고루 잘 반영하고 있다. 신앙의 자유를 찾아서 신대륙에 정착한 스코틀랜드의 장로교도들과 영국의 청교도들이 중심이 되어 엄격한 스코틀랜드의 규례를 벗어나 미국정황에 맞는 새로운 헌법을 만들었으며 그 이후에 상세한 내용을 갖고서 지속적으로 발전시켰던 것이다.

미국의 교회 헌법 역시 불후의 명작인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을 본 따서 만든 것이 사실이지만 그들의 상황에 맞게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을 수정해서 적용했던 것이다. 선택의 여지가 없는 초기의 한국 장로교단의 헌법은 미장로교 선교사들에 의하여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의 영향을 받은 미장로교단의 헌법(Form of Government)의 형틀과 신학사상의 기초 하에 유교의 영향을 받아 수직적 문화의 전근대적 요소가 병합된 독특한 한국적 장로교 헌법의 스타일로 나타났던 것이다. 현재 한국의 장로교단은 100년의 짧은 역사에도 불구하고 금세기 세계최대의 교단으로 급부상했고 세계가 주목하는 교단으로 성장하였다.

그러나 헌법(정치)에 있어서는 아직도 200년 전의 초기 미장로교의 헌법의 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으며 각각 규칙과 규례에 대한 해설과 보충설명이 미흡하고 우리상황에 맞는 신학성이 들어있지 않은데다가 조선의 유교사상이 군데군데 서려있어 선진국가의 장로교단 헌법과 비교할 때 내용면에 있어서 아직도 열악한 상태에 있다.

특히 정치규례에 있어서 헌법의 총론의 형식만 갖고 있는 상태여서 교단의 선교정책과 교회론, 목사와 장로의 역할 및 기능, 여성의 직분 및 지위, 직분자의 역할, 치리회의 기능, 타교단과의 교류, 에큐메니칼 정신, 중국교포와 아시아 노동자들과 같은 소수민족 및 타민족에 대한 입장 등, 현 교회 및 사회 현실에서 발생할 수 있는 다양한 항목들이 결여되어 있고 그나마 주어진 항목에 대한 상세하고 현실 적용 가능한 해석이 약한 실정이다.

미장로교단의 헌법은 위에서 열거한 것처럼 다양한 현행이슈를 포함하고 있다. 교단의 헌법이라는 것은 성경을 기초로 하여 종교개혁시! 대의 전통과 신학을 반영하고 특정교단의 시대적 상황과 긴밀한 관계 속에서 나온 교회의 영적 질서를 위한 신앙의 표준 규례서인 것이다. 이제 우리의 헌법(정치)은 초기의 미장로교단의 정치규례의 틀을 벗어나 우리의 신학과 우리의 고난의 역사가 반영된 주체적인 우리의 헌법(정치)이 필요한 것이다. 그와 달리 우리의 전신인 미장로교단의 헌법의 틀을 유지하고자 원한다면 보다 발전된 미장로교의 헌법의 내용을 비교 연구하여 우리의 상황에 보다 적절한 형태로 발전시키는 것이 필요하다.

2. 교회 정치 ‘원리’의 개정에 대한 필요성에 관하여

한국 장로교회 헌법에서 교회 정치 제 1장의 ‘원리’의 내용은 ‘양심의 자유,’ ‘교회의 자유,’ ‘진리와 행위,’ ‘교회의 직원’ ‘치리,’ ‘권징’ 으로 되어있다. 이것은 미장로교 헌법 (Book of Order)의 정치편(Form of Government)의 기본원리(Preliminary Principles)에 나오는 여러 내용 중 ‘교회질서의 역사적 원리’(The Historic Principles of Church Order)에 속한 내용이다.

‘교회질서의 역사적 원리’의 내용은 ‘판단의 권리’(Right of Judgement), ‘집단적인 판단(Corporate Judgement), ‘교회 직원’(Officers) ‘진리와 행위’(Truth and Goodness) ‘의견의 차이’(Differences of Views), ‘교인에 의한 선거’(Election by the People), 교회의 권한(Church Power), ‘교회의 권징’(Church Discipline)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는 1789년에 미장로교가 헌법을 처음 만들 때 교회정치의 원리로서 채택한 것이다. 그 중의 ‘판단의 원리’(한국 교회 헌법에서는 ‘양심의 자유’로 표현)는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 20장에 나오는 ‘양심의 자유’를 그대로 옮긴 것이다.

‘집단적인 판단’(교회의 자유)은 교회라는 단체가 판단의 양심의 자유’로서 ‘판단의 권리’(양심의 자유)에서 비롯된 것이다. 국가나 시공무원의 압력 없이 교회의 신령한 일들의 행사를 교회의 권한으로 교회 스스로 선포할 자격이 있다는 것이다. 이와 같이 ‘양심의 자유’가 나오게 된 배경은 스튜어트 왕조인 제임스 1세와 찰스 1세가 청교도와 스코틀랜드 장로교도들에게 영국 국교의 예배형식과 감독제를 강요하는데 따른 것이다.

청교도들이 중심이 된 의회는 1643년 웨스트민스터 회의를 허락했고 3년간에 걸친 웨스트민스터 회의는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 20장에서 신앙의 자유를 짓밟는 왕들의 폭정에 대하여 하나님의 말씀에 벗어난 인간의 계명과 명령을 거부할 ‘양심의 자유’를 선포했던 것이다. 당시의 상황은 절대왕정의 체제에서 시민사회로 넘어가는 과도기였고 왕과 의회의 싸움에서 비롯된 것이다.

미국 장로교단이 1789년 헌법을 작성함에 있어 기본원리로서 ‘양심의 자유’를 채택한 것도 1776년 영국과의 독립전쟁이 끝나고 시민사회가 형성될 무렵 국가가 종교의 자유를 침탈할 수 없다는 전제하에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가 1922년 이 원리를 채택할 당시는 개인의 권리와 자유, 인권이 존중되는 시민사회와 상관이 없이, 일제치하의 속국으로서 전근대적인 유교의 이념이 맞물려있는 전통 사회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 기독교인들은 교회헌법이 완성되는 1922년 이전부터 신앙양심을 갖고 1919년 3.1운동을 하면서 일제에 저항했고 일제가 신사참배의 명목으로 기독교인들을 탄압할 때 많은 기독교인들과 교회가 자신들의 신앙으로 스스로 판단하여 그들의 명령을 거부할 ‘양심의 자유’를 선포하여 박해가운에서도 신앙을 지킨 것이 사실이다.

이 외에도 헌법의 교리에 상관없이 공산정권의 침탈과 독재정권의 폭거에서도 많은 신앙인들과 뜻있는 교회들이 폭군과 독재자들의 명령, 즉 말씀에 벗어나는 인간의 명령이나 계명을 거부할 ‘양심의 자유’를 갖고 신앙적으로 판단했던 것이다.

이와 같이 ‘양심의 자유’의 원리가 특정국가의 상황에서 태동되었다 할지라도 시대와 상황을 초월하여 다른 국가에서 신앙적 판단으로서 ‘양심의 자유’가 실천될 수 있었던 것은 그것이 교회 정치규례를 초월하여 신앙의 본질이었기 때문이다.

사실상 ‘교회 정치원리’를 서두에 표명하는 교단은 미장로교단과 한국장로교단 밖에 없다. 그러나 미장로교단은 헌법이 만들어진 1789년 이래 분열과 통합을 거듭하면서 헌법의 수정과 첨가가 계속 이루어져 교회 정치의 원리로서 다양한 것을 채택하고 있다. 그 ‘기본 원리’에 대한 내용은 ‘교회의 머리,’ ‘교회의 위대한 목적,’ ‘교회 질서의 역사적 원리,’ ‘교회 정치의 역사적 원리,’ ‘미장로교단이 채택한 신조들’이다. 이 원칙의 내용을 접하면 그들의 신학과 사회성이 충분히 배여 있다.

앞에서도 언급했지만 우리나라 장로교 헌법은 위에 열거한 것 중에서 ‘교회 질서의 역사적 원리’만을 ‘교회정치의 원리’로 채택하고 있다. 그래서 현재의 우리의 교회헌법은 200년전 미장로교 헌법의 ‘기본 원리’로부터 조금도 더 나아가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우리는 세계최대의 장로교 국가로서! , 기독교 역사가 100년 이상이 된 나라로서 이제는 미국장로교 헌법의 형틀을 그대로 유지할 것이 아니라 스코틀랜드 헌법처럼 우리의 독자적인 신앙고백과 삶, 역사적 사건과 현사회적 이슈들이 반영된 새로운 ‘교회정치의 원리’를 만들거나 아니면 현행의 틀을 유지하되 미장로교 헌법(Book of Order)의 수정 보완된 점을 참조하여 우리의 역사적 삶이 담긴 내용을 새롭게 첨가하는 것이 필요하지 않나 생각한다. 헌법이란 것은 우리의 삶의 반영이기 때문이다.

3. 한국 장로교 헌법(정치)에서 ‘하나님의 의지와 계획’의 강조에 대한 필요성에 관하여

 교회 헌법이 쓰여진 가장 궁극적인 목적은 신앙과 교회 생활, 예배활동에 질서를 부여하고자 하는 것이다. 그래서 미장로교는 교회 헌법을 질서의 책(Book of Order)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장로교 헌법의 맨 앞에 나오는 ‘신앙고백’편은 신학적 교리를 바탕으로 내용 있고 질서 있는 신앙을 위해 우리가 믿고 고백하는 것의 내용과 우리가 믿는 믿음의 대상인 하나님에 대해 체계 있게 기술한 ‘신앙 질서의 책’이고 두 번째 나오는 교회 정치편은 교회를 통해 하나님의 의지를 실현하기 위해 교회와 관련된 모든 일을 규정한 ‘교회 질서의 책’이고, 교회 권징은 죄를 지은 성도들이 교회의 기??통하여 흐트러진 신앙생활에 질서를 잡기위한 ‘품행 질서’에 관한 책 이다. 종교개혁자들은 품행 질서에 많은 관심을 부여하여 신앙규례를 위한 책이름도 ‘제1기강 규례서,’ ‘제 2기강 규례서’ 라고 칭했던 것이다. 마지막으로 예배모범은 하나님께 질서 있게 예배드리기 위한 ‘예배질서의 책’이다.

이처럼 기독교인들에게 있어서 질서는 아주 중요한 단어인 것이다. 그래서 바울도 고린도 교인들에게 “모든 것을 적당하게 하고 질서대로 하라”(고전 14! :40)고 권했던 것이다. 국가의 법이 그 사회의 질서와 유지를 위하여 있듯이, 교회법 역시 성도 개개인과 그리스도의 유기체인 교회의 질서를 유지하기 위하여 있는 것이다.

그러면 질서의 주체는 누구인가? 왜 우리가 질서 있게 신앙생활과 교회생활을 해야 하는가?를 묻지 않을 수 없다. 질서의 주체는 우주를 질서 있게 창조하신 하나님이고, 질서 있게 신앙생활을 해야 하는 이유는 결국 그분의 계획과 의지대로 살려고 하는 것이다.

오늘날 교회에서 우리가 회의하고 의논하고 토론하는 이유는 하나님의 의지와 뜻을 파악하여 그 분의 뜻을 이 땅에 질서 있게 잘 실현하기 위함이다. 허나 아쉬운 것은 한국 장로교 교회 헌법(정치편)에는 교회질서의 주체인 ‘하나님의 의지와 계획,’ ‘하나님의 뜻의 실현,’ ‘하나님의 은총과 섭리’라는 말을 거의 찾아볼 수가 없다.

그러면 우리가 본 딴 미장로교의 헌법을 예로 들어보겠다. 미장로교 헌법 중 기본원리의 첫 번째 원리로서 ‘교회의 큰 목적’이라는 규례에서는“교회의 큰 목적은 ‘하나님의 나라’를 제시하는데 있다”고 말하고(G-1.0200). 세 번째 원리인 ‘교회규례의 역사적 원리’에서 ‘교회의 권한’을 설명하는 내용 중에 “치리회의 모든 결정은 계시된 ‘하나님의 계시’에 기초를 두어야 한다고(G-1.0307)명기함으로서 교회에서 주어지는 결정들이 인간의 결정이 되지 않도록 강조하고 있다.

'장로교의 정치원리'에 관한 규례에서는 “장로들은 단순히 교인의 의사를 반영하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뜻’을 드러내려고 해야 한다”(G-4.0301)고 함으로서 당회의 민주주의 원칙을 초월하여 인간의 의도나 뜻보다는 하나님의 의지의 대변을 강조하고 있다.

지 교회에 관한 규례에서도 “지교회의 교인들은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특히 예배, 말씀선포, 성례전의 참여, 등 사회적 봉사의 사역을 수행할 수 있다”(G-7.0201)고 선포함으로서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지 교회 교인들의 정체성을 드러내고 있다. 그러나 우리의 지 교회에 관한 규례는 단지 지교회의 설립과 폐지에 대해서만 나와 있다(제2장).

‘교회의 직원’에 대해서도 “‘하나님의 섭리와 은총’에 의하여 특별한 사역을 수행하도록 부름 받았다”(G-6.0105)고 표명함으로서 모든 직분이 인간의 소명에 의하지 않고 하나님의 섭리와 은혜에 의해서 되었음을 강조한다.

결국 규례라는 것은 이처럼 하나님의 은총과 섭리에 의하여 부름 받은 사람들이 질서의 주체이신 하나님 뜻과 의지를 잘 파악하여 질서 있게 하나님의 나라를 이 땅에 실현하기 위한 신앙지침서인 것이다. 따라서 한국의 장로교회의 헌법도 교회의 목적과 회의의 결정, 당회원의 의무, 지 교회 교인들의 정체성, 직분자의 소명 등에 있어 ‘하나님의 의지와 계획,’ ‘하나님의 백성,’ ‘하나님의 은총과 섭리’의 어휘들이 삽입되어 교회 정치의 목적이 교회를 통하여 하나님의 계시와 의지에 입각한 질서 있는 하나님 나라의 실현에 있음을 강조해야 할 것이다.

4. 한국 장로교단의 ‘권사제도의 편의성과 원칙’에 관하여

장로교의 종주국인 스코틀랜드 교회 헌법(The Constitution and Laws of the Church of Scotland) 서문을 보면 ‘원칙과 편의’(적용)라는 부분에서 “교회의 법은 근본적인 원리를 변경시킬 수 없으며 교회의 근본적인 법은 성경에서 유래한다.“고 말하고 있다.

미장로교 헌법도 마찬가지이다. 교회의 법은 성경에 종속되어있으며 성경의 범위 내에서 한정되어있다고 기술한다. 그래서 법을 적용하는데 있어서 성경을 제일 원칙으로 삼고 그 말씀의 원칙을 그 시대의 상황에 맞게끔 재해석해서 편의성을 추구해야 하는 것이다.

스코틀랜드 교회 헌법은 편의성(적용)을 원칙 못지않게 상당히 중요하게 생각한다. 왜냐하면 적용이 불가능한 원칙은 의미가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스코틀랜드 헌법은 편의성을 도로의 흰색라인으로 비교하면서 자동차가 흰색라인을 넘으면 편리할 때도 있지만 그것은 규칙을 위반하는 것이기 때문에 불안하다는 것이다. 즉 원칙을 무시한 편의성은 언젠가 큰 코를 다칠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권사제도를 생각해보자. 권사제도는 분명히 성경에 나오지 않는 직분이다. 성경에 나오는 직분은, 감독, 목사, 교사, 장로, 집사이다. 역할 분담이 명료하지는 않지만 일반적으로 감독과 목사는 영적인 일과 관련된 것으로 목회를 하는 목회자이고, 교사는 말씀을 잘 가르치는 자이며, 장로는 감독과 목사를 도와 교회와 관련한 일을 돌보며 때로 병든 자나 가난한 자를 찾아 심방도 하는 행정과 영적인 일들 동시에 하는 직분이다. 집사는 보통 봉사를 하는 직분으로 되어있다.

그러나 권사에 대한 언급은 찾아볼 수 없다. 권사제도의 기원은 감리교의 원조 존 웨슬리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1746년 당시 웨슬리가 ‘권고하는 자’로서의 뜻을 가진 ‘권사’(exhorter)라는 직분을 만들 때는 사역자가 부족해서 헌신적인 평신도를 택해서 일정기간 훈련시킨 다음 ’평신도 설교자‘(lay preacher) 역할을 하게끔 했던 것이다. 그래서 권사의 원래의 기능은 설교자가 없는 곳에 설교를 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설교뿐만 아니라 초신자들이거나 신앙이 약한 사람들을 위하여 신앙적인 권고도 하고 심방의 기능까지 담당하여 상담도 하고 위로도 해주어 사역자가 부족한 상태에서 목회자를 돕는 역할을 하였다.

그러나 1939년 미 연합감리교회는 남북 감리교단이 연합되면서 ’exhorter'(권사)의 직분을 폐지한다. 대신 ‘평신도 사역자’(lay minister)와 '평신도 지도자‘(lay leader) 라는 직분을 세워 말씀 사역자로서 봉사하게 하여 직분의 명칭만 사라지게 한 채 그 기능은 계속 이어가고 있다.

현미연합 감리교회에서는 평신도 사역자가 되기 위해서는 자격증(license)이 필요하다. 총회에서 실시하는 성서학, 교리, 기독교인의 삶, 실천 등의 공부를 한 다음 평신도 사역자 자격을 얻는데 매년 적절한 과목을 수강함으로서 7년 동안 자격증 갱신을 해야 한다.

이러한 감리교의 권사제도가 한국 감리교에 들어올 때는 처음에는 ’견습‘ 또는 ’전도사‘라고 불리웠다. 이 제도를 장로교에 도입한 사람은 길선주 목사였다. 당시는 장로나 집사가 많이 없었던 터에 교회 일을 순조롭게 하기 위하여 신앙연조가 있으며 덕이 있고 신망이 높은 여성 평신도를 ’권사‘라 하여 교회 봉사 일을 하게 하였던 것이다. 이것이 폐지되지 않고 오늘에 까지 이르게 되어 권사라는 직분으로 정착을 하게 된 것이다.

여성은 교회직분으로서 서리집사 이외에 사실상의 집사인 안수집사가 되지 못하기 때문에 권사라는 명칭을 부여받게 되었던 것이다. 쉽게 얘기하면 권사는 ’신앙이 좋으며 50세 이상 된 여자 서리집사‘의 일계급 특진인 것이다.

최근 통합측 교단은 권사의 안수를 결정하여 이제는 ’안수권사‘라는 말이 생겨나게 되었다. 여기서 문제가 되는 것은 모두가 원칙 없는 편의성이라는 것이다. 이것은 감리교의 평신도(남자, 여자)설교자로서의 권사의 원래 취지를 거부한 것이며 ’권사‘라는 직분이 없는 성경의 원칙과 개혁 장로교단의 원칙을 벗어난 것이다.

현재 한국 장로교단은 이미 미감리교에서도 폐지한 직분을 아직까지 차용하고 있으며(한국은 아직 존재), 그것도 남자까지 부여받던 직분을 여성만 가능하게 만들었고 안수집사의 직분도 거치지 못하고 치리권도 없게 했다. 안수도 편의상 최근에 한 것이다. 계속 편의성을 추구하다 보니 근본 원칙과는 점점 멀어지게 되는 것이다. 그것은 감리교와 성경과 장로교단의 원칙을 거부함으로서 한국적 상황이라는 특유의 편의성의 수용의 결과인 것이다.

한국 장로교단은 수많은 핍박과 박해 속에서도 교회역사 100년을 버텨온 성숙한 교단이다. 이제 세계적으로 장성한 교단으로서 편의성을 벗어나 성경과 장로교의 원칙으로 되돌아가야 할 때가 아닌가 생각한다. 우리는 너무 현실성과 편의성에 익숙해 있다. 어쩌면 100년 한국의 교회사는 원칙과 편의성의 변증법적 발전이었을는지도 모른다. 이제는 원칙으로 되돌아가는 차원에서 권사제도의 개정에 대해서 고려해 볼 때가 아닌가 싶다.

 
기사입력: 2015/01/31 [23:57]  최종편집: ⓒ lawnchurc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