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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정환 신부, "정의가 환히 빛날 때까지 지랄한다"
임실치즈의 대부 지정환 신부, 법무부로부터 한국국적 수여받아
법과 교회 (2022)


 '지정환'이란 자신의 이름이 "정의가 환히 빛날 때까지 지랄한다"고 말한 지정환신부가 한국에 온 지 57년만에 한국인이 되었다. 

‘임실 치즈’의 아버지 격인 지정환(85·본명 세스테벤스 디디에) 신부가 2월 4일 법무부로부터 국적 증서를 받으면서 법적으로 한국인이 됐다. 몸이 아픈 탓에 수녀(좌측)가 대신 참석했다.


▲     ⓒ 법과 교회

 
지 신부는 벨기에 귀족가문의 막내로 태어나 1958년 사제 서품을 받은 뒤 이듬해 한국행 배에 올라 “전쟁의 땅이 희망을 품게 하자”는 이유였고, 첫 부임지인 전북 부안에서 그는 바닷물을 막아 여의도보다 두 배 넓은 간척지를 만들었고 가난한 농민들에게 농지로 나눠줬지만 고리대ㆍ노름으로 그 땅들이 다 넘어가는 걸 보며 상처를 받았다. "다시는 한국인들의 삶에 개입하지 않으리라." 고 다짐까지 했단다. 

그러나 그는 64년 두번째 부임지인 전북 임실에서 가난한 농민들을 보면서 신양유로 치지를 만들기 시작했다.

그러나 3년 동안의 치즈작업은 실패하고 만다. 그 이후 3개월 동안 이탈리아로 다시 가서 치지만드는 제법을 갖고 와서 치즈만들기에 성공한다. 한국 최초의 치즈였다. 농민들이 만든 임실치즈는 서울의 특급호텔까지 유통망을 넓혔고, 1972년 명동 유네스코 회관에 국내 최초로 생긴 피자 가게에 공급된 모짜렐라 치즈도 지 신부의 작품이었다.

공장 규모도 커지고 기술을 배우려는 사람들도 하나 둘 찾아오기 시작했다. 새마을 운동이 발생하기 전에 이미 전북 임실에서 치즈 농업혁명을 일으킨 것이다. 현재 임실치즈가 지역사회에 끼치는 경제효과는 1000억원 이상이고, 전국적으로 임실치즈피자 프랜차이즈 업체만 20여개, 임실치즈를 쓰는 브랜드만 70여개다. 이처럼 지신부는 사업에도 성공을 한 신부였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재산은 아무 것도 없었다. 벨기에로 병치료차 갔을 때도 돈을 갖고 간 것이 아니라 달랑 생필품이 든 가방하나만 갖고 갔다.  

지신부는 사업만 하지 않았다. 역사의식이 있는 신부였다. 현대통령의 아버지에 대해서 민주화투쟁을 하기도 했다. 시위 도중 경찰에 연행 돼 강제 추방 직전까지 가기도 했다. 


▲     ⓒ 법과 교회


농촌 발전에 관심이 있던 박정희 대통령이 “임실 치즈로 농민들에게 도움을 주고 있는 신부”라는 보고를 듣고 추방 명령을 거뒀다는 일화까지 전해진다. 

5·18 민주화운동 때는 시민군들에게 나눠 줄 우유를 트럭에 싣고 혼자 광주로 내려갈 정도로 의식이 있는 신부였다. 당시 경찰들을 만나면 '지정환'이란 자신의 이름이 "정의가 환히 빛날 때까지 지랄한다"는 의미라고 설명하기도 했다. 

이처럼 지정환신부는 역사의식과 개척의식을 갖고 한국민들과 함께 웃고 함께 울었던 것이다. 가난한 자들에게는 빵을 주었고 장애인들에게는 친구가 되었고 불의한 자들에 대해서는 몸으로 항거했다.   


▲     ⓒ 법과 교회
  

이러한 지정환 신부는 몸이 아파서 국적수여식에 식에 참석하지 못했다. 지신부는 한 언론사의 인터뷰에도 거절하면서 "(언론에) 마치 내가 영웅처럼 다뤄지는 게 싫다"는 거였다. 언론사 기자는 다음과 같이 e메일로만 답변을 받았다.  

질의 :57년 만에 법적으로 한국 사람이 되셨습니다.
응답 :“법무부에서 특별한 배려로 저를 특별공로자로 인정하여 대한민국 국적을 주신다니 기쁩니다. 대한민국 정부에서 저를 한국사람으로 인정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제게는 정말 좋은 선물입니다.”

질의 :신부님에게 한국이란 나라는 어떤 의미인가요.
응답 : ”벨기에에서 외방선교 신학교(선교목적의 신학교)를 졸업하고 한국에 도착한 그 순간부터 한국은 저의 고향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첫 부임지인 부안은 제겐 첫사랑같고 두 번째 부임지인 임실은 제게는 고향입니다. 임실에 부임했을 때 “천주교 신자 뿐만아니라 임실 군민 전체에게 뭔가 하나쯤은 꼭 남겨달라는 임실군수(문필병)의 한마디가 지금의 임실치즈를 만들었습니다. 한국은 제게 고향이자 가족이 있는 곳입니다. 신랑ㆍ신부가 결혼하면서 영원히 함께 하자고 약속하듯 저 또한 한국과 영원히 함께 하고자 합니다.“

질의 :이제 임실치즈와 관련된 일은 안하시나요.
응답 : ”저는 그저 성직자일 뿐입니다. 현재 일하고 있는 사람들(후임자)이 편하게 일을 하기 위해서는 제가 관여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지난해 임실치즈축제를 다녀왔는데 축제기간 중 10만명 이상이 방문하였다는 이야기를 듣고 ‘내가 시간낭비하지 않았구나’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질의 :최근 건강이 나빠지셨다고 들었습니다.
응답 : ”지난해 1월 17일경 집에서 갑자기 쓰러진 이후 말하는데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그 이후 치과 치료, 백내장 수술등 병원을 찾는 일이 많아졌습니다. 하지만 치즈공장가족, 무지개가족, 장학재단가족 등 나에게는 수많은 가족이 있습니다. 그래서 난 행복한 사람입니다. 한국에서의 모든 일을 모두 잘 시작했고, 결국은 잘 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난 또 행복한 사람입니다.”

질의 :곧 민족의 명절인 설입니다. 설을 맞아 장애인 및 소외계층들에게 남기고 싶은 말씀은 있으신지요.
응답 : ”지금 할 수 없는 것, 없어진 것에 대해서 슬퍼하지 말고 남아 있는 것에 감사하며 살길 바랍니다. 최선을 다해 열심히 살면서 세상으로 더 밝게 뻗어 나가길 희망합니다.“

질의 :앞으로 이 땅에서 꼭 하고 싶은 일이나 이루고 싶은 소망이 있으신지요.
응답 : ”요사이 무지개 가족에서 함께 생활했던 분들의 사망 소식을 자주 접합니다. 그럴 때마다 무지개 가족으로 최선을 다해 열심히 사셨던 분들이기에 ‘장애로부터 해방되어 천국으로 가시는구나‘라고 생각합니다. 어쩌면 슬프지만 기쁜소식이지요! 비온 뒤 청명한 하늘에 기다리면 나타나는 일곱 색깔 무지개처럼 장애인들이 세상으로 더 밝게 뻗어 나가길 희망합니다. 저는 한국에 올 때 이미 한국과 영원히 함께 하길 마음속으로 약속했습니다. 천주교에서는 이제 신부가 죽으면 모두 화장(火葬)을 합니다. 아마도 제가 죽게 되면 화장(火葬)하여 천주교 ’천호성지‘로 가겠지요!”

대형교회를 이룬 개신교 목사들은 은퇴시 아파트, 부동산, 전별금, 상속 등에 관심을 둘 것이 아니라 지신부처럼 마음을 비우고 가난한 자들과 없는 자들을 위해, 역사의식과 사회의식, 개척정신, 나눔의 의식을 갖고 살아야 할 것이다. 세습을 하고, 돈을 챙기고, 명예를 추구하고, 성서적 삶이 실종된 것이 성공적인 목회였는지 지신부의 목회가 성공적이었는지 다시 한 번 성공적인 목회에 대해 곰씹어 볼만한다.    

 
기사입력: 2016/02/09 [05:20]  최종편집: ⓒ lawnchurc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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