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법 >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로 보내기 글자 크게 글자 작게
법철학적인 입장에서 본 사면선포 철회행위
교단의 합목적성보다 그리스도와 성서의 정의 추구해야
황규학 (1832)

 

▲     ©

 

무엇이 법이 아닌가?

 

현대 법철학에서 법개념에 관해 주장을 한 사람은 독일 법철학자 라드브르흐였다. 그는 법에 대해서 정의, 합목적성, 법적 안정성이라는 이념을 실현하는 의미체로 보았다. 라드브르흐는 법개념이 정립된지 얼마되지 않아 나치정권이 들어서자 '무엇이 법이냐'보다 '무엇이 법이 아닌가'에 더 관심을 가졌다. 오늘날 교계 역시 '무엇이 법이 아닌가'에 관심을 둘 필요가 있다. 합동교단의 안명환 전총회장의 제명사건과 효력정지건은 역시 무엇이 법이 아닌가를 말해주는 사건이었다. 결국 교단의 결정은 효력정지되고 말았다. 다수의 결의는 법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교단의 불법

 

법원은 무엇이 잘못된 결의인가를 보여주었다. 라드브르흐는 독일의 나치정권을 보변서 법률적 불법과 초법률적 법을 인정하게 되었다. 101회 총회 합동교단의 총대들은 합법성을 띠고 결의했지만 결국 절차적 불법결의가 되었고, 초법률적 결의가 되고 말았다. 이는 예장통합교단의 사면선포철회결의  마찬가지 이다. 총회장의 행정처분행위는 재판을 통해서 취소나 철회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다수의 총대들이 결의하였기에 결국 법률적 불법결의이거나 초법률적 결의가 되고 말았던 것이다. 

 

교수들과 총대들의 법의식의 부재

 

이는 교수이하 총대들의 법의식의 부재에서 비롯된 것이다. 결국 법원으로부터 사면선포철회 행위 역시 안명환전총회장사건처럼 절차법을 위반했기 때문에 효력정지될 확률이 높다. 법원은 합동교단처럼 통합교단의 총대들의 결정 역시 무엇이 법이 아닌가를 보여줄 필요성이 있다.   

 

라드브르후는 나치정권을 보면서 법은 불법이 아니라고 주장하였다. 그러나 마르칙(Rene Marcic)은 "인간은 불법의 창을 통해 법의 정원을 바라본다. 불법은 법속에 서 있다" 라고 하여 나치정권의 불법을 용인하였다. 오늘날 일부 교단의  총대들이나 교권주의자들은 불법의 창을 통해 법의 정원을 바라보면서 불법은 법속에 서 있다고 말할 것이다. 

 

사면선포철회행위

 

그렇다면 채영남총회장의 사면선포철회행위를 법철학적인 관점에서 파악해 보기로 한다. 라드브르후의 정의, 합목적성, 법적 안정성이라는 차원에서 살펴보기로 하자. 사면선포철회행위는 정의론적인 관점에서 볼 때는 수용하기 어려운 행위이다. 하나님의 이름으로 선포하고 사람의 이름으로 철회하는 것은 교회정의론적인 입장이나 사회정의론적인 입장에서 볼 때 정의롭지 않은 행위이다.

 

정의는 자기의 이기심을 극복하면서 타인의 권리와 자유를 존중해주고 지성과 도덕심을 함양하여 이성과 양심, 합리성에 근거해야 하는 법정신의 가치 이다. 라드브르흐에게 정의는 법의 보편적이고도 합목적성과 법적 안정성으로 함께 법이 봉사해야 할 가치이념이었다. 정의라는 것은 인간의 의지, 심정, 성격 등 인간 자체를 평가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상호간의 관계, 이상적 사회질서를 대상으로 하는 것이다.  

 

교회의 정의

 

특히 교회의 정의는 양심과 신앙, 성서에 기초한 행위이다. 교회의 정의란 그리스도의 용서와 사랑, 실천안에서 행해지는 신앙적 가치이다. 그럴경우 교회정의론적인 입장에서 볼 때 사면선포를 했다가 철회하는 행위는 그리스도의 용서와 사랑을 포기하는 것이기 때문에 교회정의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물론 타인의 권리와 자유를 존중해주지 않았기 때문에 사회의 정의관념에서도 벗어나는 행동이다. 또한 신뢰의 원리와 '약속은 지켜야 한다'는  자연법적인 법의 기본원리인데 종교단체에서 하나님의 이름으로 한 약속을 헌신짝 내버리듯 한 행위는 교회적 정의와 사회적 정의를 져버리는 행동 이다. 더군다나 장로교단 헌법의 1조는 양심의 자유인데 사람이 무서워서 그리스도 용서의 행위를 포기한 행위는 신앙적 정의를 스스로 져버리는 것이다.

 

법의 합목적성 

 

그러나 정의만을 갖고서 법의 이념을 충족할 수는 없는 것이다. 법은 합목적성이 있어야 한다. 합목적성은 목적에 맞추어 방향을 결정하는 것으로 법을 시행하기 위해서는 국가의 법질서가 어떤 표준과 가치관에 의하여 구체적으로 제정 실시되는 원리이기도 하다. 그것은 국가와 사회가 처한 상황과 그 상황속에서 지향해야 할 문제이다. 어떤 목적을 갖고 법을 집행하는 것이다. 법이라고 해서 어떤 만병통치약처럼 처방책이 있는 것이 아니라 '내심의 깊은 곳으로부터 결단을 하지 않으면 안될 때가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법을 시행하는데 있어서 개인을 우선해야 할지, 단체를 우선해야 할지, 문화를 우선해야 할지를 선택해야 한다. 개인을 우선해서 집행하려는 것은 개인의 자유와 행복이 최대한 보장되도록 해야 한다. 사면대상자들을 우선한다면 그들의 신앙의 자유와 행복을 우선 생각하는 것이다. 그러나 단체를 우선하려면 사면대상자들보다 통합교단이라는 단체에 중점을 두고 행하는 것으로 개인들의 인격은 단체의 부분으로 단체의 가치를 실현하는 범위내에서 인정되고 존중되는 것이다. 교단이라는 단체를 유지발전시키기위해서 개인들이 단체에 종속되게 하는 것이다. 

 

총대들, 개인의 인권보다 교단의 가치 우선 생각 

 

국가를 우선 생각하면 군인개개인들의 목숨은 파리목숨이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법철학적인 관점에서 전 총회장과 총대들은 교단의 파행을 막기위하여 개인들이 권리와 존중대신 교단이라는 단체를 선택한 것이다. 즉 그는 사면대상자들의 개인인권이나 자유보다 교단의 파행을 막기위해 단체의 가치를 우선 생각한 것이다. 

 

문화주의는 개인도 단체도 아닌 인간이 만든 문화혹은 작품을 최고의 가치로 삼는 것이다.  수천만 노예의 목숨보다 피라미드가 위대하다고 보고, 불난 집에서 아이의 목숨보다 피카소의 그림을 먼저 꺼낼 것을 장려하는 견해이다. 얼마전 뉴욕의 한 신문기자는 지하철에서 치어 죽는 한인의 사진을 찍기위하여 그 사람의 생명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않고 사진에 촛점을 두었다. 사람의 생명보다 문화적 가치를 우선한 것이다.  

 

전총회장과 교단총대들은 30 여년동안 이단누명에 머물러 고통당한 그들의 현실보다 이단은 회개해도 이단이며 사면해서는 안된다는 교계와 교단의 문화를 선택했던 것이다. 즉 사면대상자들의 영적 생명보다는 교단의 문화를 선택한 것이다. 이는 교단의 발전과 안정이라는 법의 합목적성의 일환이라고 볼 수 있다. 나름대로 통합교단의 목적에 부응하여 타교단의 개인들보다는 자교단이라는 단체를 중시한 결정이다. 그렇다면 처음부터 타교단사람들을 이단정죄하지 말아야 했다.

 

 법적 안정성

 

소크라테스는 악법도 법이라고 했고, 괴테는 부정의로운 법도 무질서보다 낫다고 했다. 법의 1차적 기능은 질서를 유지하고 분쟁이 발생한 경우에 평화를 회복하고 유지하는데 있다. 소멸시효, 공소시효 취득시효를 두는 것도 법적 안정성을 유지하기 위한 것이다. 헌법도 국가안정보장과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서 있는 것이다.  형법은 개인적 법익, 사회적 법익, 국가적 법익을 침해라는 행위를 처벌하여 시민질서와 사회질서, 국가질서의 유지를 목적으로 한다. 교단의 헌법 역시 권징법규를 둠으로써 교단의 질서와 유지를 목적으로 한다. 법적 안정성은 법보장의 안정, 법의 불가침성과 실현가능성을 요구한다.

 

이러한 안정성을 요구하기 위해서는 조직 및 절차법규가 중요한 역할을 한다.  최근 교단의 결의가 일반법정으로부터 무참하게 깨지는 것은 법을 준수하지 않고 법위에서 초법적 결의, 불법적 결의를 하기 때문이다. 초법적 결의와 불법적 결의는 법적 안정성을 해치는 것이다. 이번에 합동교단과 통합교단의 일부 결의는 법적 안정성을 침해하고 있다. 합동은 안명환전총회장의 면직은 재판절차를 따라서 처벌해야 했고, 이단자들을 이단으로 규정하려면 소명기회를 주어야 했고, 통합교단 역시 사면선포철회를 하기위해서는 결의대신 행정재판을 통하여 행정처분을 해야 했다. 이러한 의미에서 채영남 총회장의 특별사면위의 동의 없는 선포취소행위와 총대들의 결의행위는 법적 안정성을 침해하는 행위였다.    

 

결론    

 

결론적으로  전총회장과 총대들의 행위에 대해 법철학적인 접근을 해 볼 때 1) 정의 차원에서는 채전총회장이 용서라는 사면선포행위를 철회함으로 그리스도의 용서와 사랑에 토대를 두는 교회정의를 위반했고, 2) 합목적성이라는 차원으로 접근할 때 개인의 권리와 자유보다는 교단이라는 단체의 자유를 우선했고, 또한 문화적인 입장에서 사면대상자의 권리와 자유, 생명보다 교계의 문화를 우선했고, 3) 법적 안정성의 차원에서 접근할 때 채총회장과 총대들은 법적 절차를 위반하여 법적 안정성의 침해를 하였다고 볼 수 있다. 

 

정의와 합목적성, 법적 안정성은 상호모순적이면서도 상호보완적이라야 한다. 극단적으로 정의만을 강조하면 "교단은 망해도 정의는 세우라", "정의만이 교단통치의 기초이다"고 주장하고, 합목적성을 강조하면 "총대들의 행복이 최고의 법이다". "총대들이 원하는 것이 법이다"고 말할 것이고, 법적 안정성을 강조하면 "악법도 법이다", "정의의 극치는 부정의의 극치이다"라고 말할 것이기 때문에 세 이념은 서로 긴장하면서도 모순을 보여준다.

 

특히 정의(용서 사랑)만을 강조하면 법적 안정성이 해쳐지고, 안정성만 강조하면 정의를 망각하는 수가 생긴다. 실정법이 아무리 안정적으로 시행되더라도 그것이 부정의로우면 시체의 정숙과 묘지의 평화에 지나지 않는다. 자연법론자들은 정의(용서와 사랑)를 무시하는 법은 "법률의 모습은 띠고있으나 불법"이라고 주장하고, 법실증주의자들은 "법이 적법한 절차에 따라서 제정되었다면 부정의로운 법이라도 법은 법이다"고 주장하고, 다만 도덕적 양심에 따라 악법을 거부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실제로 정의, 합목적성, 법적 안정성은 각 시대와 국가에 따라 그 해석이 달랐다.  경찰국가에서는 국가의 목적, 국가의 안정을 위하여 정의와 법적 안정성을 희생시켰다. 101회 통합교단 총회 역시 교단의 목적, 교단의 안정을 위하여 그리스도의 정의, 교회의 정의를 희생시켰다. 법실증주의시대에서는 법의 실정성과 안정성을 유지하기 위하여 정의나 합목적성이 소홀히 되었다. 자연법사상이 전성하던 시대는 정의가 우선시 되었다. 

 

법적으로는 자연법에 해당하는 성서의 법과 그리스도의 법이 여전히 토대를 이루는 현 교계는 교단이라는 단체의 권리보다 개인의 인권이나 자유가 우선되는 성서의 정의가 실현되고, 교단의 합목적성보다는 용서와 사랑, 영혼구원을 중시하는 그리스도의 합목적성이 주장되고, 교단법의 안정성보다 생명과 성령의 법적 안정성이 우선될 필요가 있다. 

 

그리스도인들, 교단의 정의보다는 그리스도와 성서의 정의 추구해야          

 

기독교인들은 법적 입장에서 법적 안정성이나 합목적성을 추구하기 보다는 신앙적인 입장에서 성서의 정의, 교회의 정의에 따라 불법이나 초법은 비판적으로 대처해 나갈 필요가 있다. 라드브르후는 법의 정의, 합목적성, 법적 안정성이라는 세 이념들이 서로 조화하는 가운데 다이나믹하게 법의 생명은 유지발전되어 나간다고 설명하고 있다. 라드브르후는 법적 안정성의 가치를 우선적으로 생각하던 서열을 나치스 정권이후에는 정의의 이념을 우선시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도 교단의 안정성이나 교단의 합목적성보다는 용서와 사랑의 정신을 기초로 하는 교회와 그리스도의 정의를 우선 생각해야 할 것이다. 그것이 성서의 정의와 합목적성, 그리스도법의 안정성을 추구하는 것이 아닐까?     

 

 

 

                 

 

       

           

 

 


 
기사입력: 2016/11/02 [04:02]  최종편집: ⓒ lawnchurc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