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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빈번한 송사는 나라를 망친다
한국교회의 빈번한 송사, 교회와 나라를 망쳐
황규학 (1624)

성경에는 세상법정에 송사하는 것에 대해서 부정적이다. 바울은 고린도 전서 6장에 교회에는 양심적으로 판단할 사람이 없어서 세상법정에 송사하느냐고 꾸짓고 있다.

 

너희 중에 누가 다른 이와 더불어 다툼이 있는데 구태여 불의한 자들 앞에서 고발하고 성도 앞에서 하지 아니하느냐  2.성도가 세상을 판단할 것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세상도 너희에게 판단을 받겠거든 지극히 작은 일 판단하기를 감당하지 못하겠느냐 3.우리가 천사를 판단할 것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그러하거든 하물며 세상 일이랴 4.그런즉 너희가 세상 사건이 있을 때에 교회에서 경히 여김을 받는 자들을 세우느냐 5.내가 너희를 부끄럽게 하려 하여 이 말을 하노니 너희 가운데 그 형제간의 일을 판단할 만한 지혜 있는 자가 이같이 하나도 없느냐   6.형제가 형제와 더불어 고발할 뿐더러 믿지 아니하는 자들 앞에서 하느냐 7.너희가 피차 고발함으로 너희 가운데 이미 뚜렷한 허물이 있나니 차라리 불의를 당하는 것이 낫지 아니하며 차라리 속는 것이 낫지 아니하냐 8.너희는 불의를 행하고 속이는구나 그는 너희 형제로다 (고전 6:1-8)
 

불행하게도 오늘날은 교회에서조차 세상법정에 많은 송사가 이루어지고 있다. 물론 교회법정에 기초적인 절차도 없고, 법문외한들이 대부분 포진되어 법공부를 전혀 하지 않은 채, 재판을 흉내내기 때문에 불합리한 일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교회안에서 송사를 맡은 사람들을 훈련시키지 않으면 법은 정치적 잣대로서 이용당하게되고 세상법정에서의 송사는 늘어나게 될 것이다.  그러나 조선시대에서 조차 송사는 해서는 안된다고 못을 박고 있다. 조선시대는 송사에 대해서 어떤 의식을 가졌는지 알아보자.

 

이조참의 조명교는 다음과 같이 상소한다.

 

"신이 역괘를 가지고 말씀드리겠나이다. 지금의 당론은 주역의 송사입니다. 송사라는 것은 아름다운 일이 아닙니다. 그래서 두려워하는 가운데 분수를 지켜 송사를 끝까지 하지 않는 것이 길하다고 하였습니다. 또한 엉큼하게 불량한 일을 하여 겉을 꾸미고, 힘이 있음을 믿고 이기기를 요구하면 흉하다고 하였습니다. 이는 사람들에게 송사하는 일이 없도록 하고 힘쓰고 노력하기 위해 이와같이 한 것입니다. 신이 굳세어 지금 가당치도 않은 것을 주장하는 것이 아닙니다. 미담이 굳세어 송사하기를 좋아하는 사람은 빈번이 화를 당하는 경우가 많지만 마음이 온유하여 송사하기를 즐겨하지 않는 사람은 그 때문에 재앙이 있은 적이 없다는 성인의 말씀이 참으로 옳습니다. 만일 송사가 없게 하기를 문왕 이우, 예의 임금을 감동시킨 것 처럼 한다면 이는 진실로 최상일 것입니다
"     

호조의 급전사(조선초기에 벼슬아치나 관아에 땅을 나누어 주는 일을 맡은 호조에 딸리 관아) 에서도 "고려왕조의 말기에 기강이 문란하여 전제가 먼저 무너지니, 권세가 있는 자가 다른 사람의 토지를 빼앗아 합치고, 부자와 형제간에 서로 송사하여 국가와 백성이 모두 어려운 처지에 놓이게 되었습니다"라는 기록이 있다.

 

임금은 다음과 같이 송사에 대해서 말을한다. 
 

"요사이 인심과 풍속이 야박하고 악독해져 혈육간과 친척간에도 원수처럼 반목하게 된 것은 반드시 송사하기를 좋아하여 그렇게 된 것인데 근본이 순박하고 후해진 다음에야 풍속이 따라서 고쳐지는 것이다"고 했다.

 

삼사의 하나로서 왕에게 간언하는 역할을 하는 기관인 사간원은 "힘이 있는 자는 오로지 남의 농민을 빼앗는 것을 일로 삼고 있습니다. 때론 이치에맞지 않은데도 송사를 일으키기도 하고 혹 문서를 위조하는 등 갖가기 술책을 다 부려 못하는 것이 없습니다. 그 가운데 심한 자는 허위의 사실을 날조하여 죽을 곳에 빠뜨리기도 하고, 혹 관리를 위협하여 헛말을 조작하기도 합니다. 그 때문에 빼앗긴 자들은 죽음을 면한 것만을 다행으로 여기고 관리들은 일을 늦추어 세월끄는 것만을 좋은 계책으로 삼아 그 도가 지나침에도 전혀 부끄러워할 줄을 모릅니다(명종 7년(1551)" 고 하여 힘있는 자들이 자신들의 권리를 추구하기 위해서 송사를 이용하는 것을 지적했다.

 

대사간 이기양은 "형옥중에 큰 것은 무엇보다도 살옥이지지만 기타 모든 송사가 사실 다 민생의 고통과 증거움에 관련되어 있습니다. 따라서 신중을 기해 결정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인데 근자에 형조와 서울의 장관들이 자주 바뀌어 서리배의 농간에 좌지우지되므로 뇌물이 공공연하게 행하여져 사리의 옳고 그름이 밝혀지지 않습니다. 또한 밖으로는 세력이 큰 감사와 추잡한 수령들이 송사의 심리를 전혀하지 않거나 혹은 자신의 그때그때의 심정에 따라 판결하므로 사리가 바른 자는 억울해도 풀지 못하고 힘이 강하고 교활환 자는 제멋대로 설쳐 거리낌이 없습니다. 그리하여 원성이 사방에서 터져 나와 서울과 지방이 다 마찬가지 입니다. 이러고서도 백성들이 어찌 원통함이 없겠습니까?"라고 하여 힘있는 자들이 뇌물을 주고 송사를 하는 관원들을 사서 송사를 이용하여 자신의 기득권을 추구한다고 하였다.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이다. 사회에서는 뇌물을 사용하여 검찰이나 판사를 매수하고, 교단에서도 힘있는 목사들이 뇌물을 갖고 재판국원들을 매수하여 자신들에게 유리한 결정을 얻도록 한다. 이단을 판정하는 사람들 역시 물질에서 자유롭지 않고 총대들이나 국원들을 매수하는 일들이 비일비재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결국 조선시대에도 송사를 좋아하는 자들은 힘이 있는 자들이고, 송사에 관여한 재판국원들은 항시 뇌물에서 자유롭지 않고, 힘있는 자들과 결탁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므로 임금이하 사간원에서까지 송사에 대해서 부정적으로 말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예수를 믿는 한국교회는 송사하는 것을 밥먹듯이 하고 있다. 특히 고소고발을 남용하여 송사를 즐기는 목사들도 많이 있다. 이들은 교회보다 경찰이나 법원에서 사는 것을 일로 하고 있다. 결국 고소고발과 송사가 사라져야만 한국교회는 살아날 수 있을 것이다.     


 
기사입력: 2016/11/13 [09:29]  최종편집: ⓒ lawnchurc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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