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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에도 변론의 기회는 주었다.
통합이대위, 합동 신학교육부, 변론의 기회조차 주지 않는 신마녀사냥 재판
황규학 (14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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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장로교단의 이단정죄재판이나 결의는 피고의 소명기회를 주지 않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있다. 이는 중세나 북한, 나치, 조선에도 없었던 것이다. 이미 답을 놓고 하는 재판이지만 중세의 마녀사냥재판, 빌라도 재판, 북한의 독재재판 등이라할지라도 당사자 변론의 기회는 주고 있다. 그러나 통합이대위나 합동이대위는 변론기회조차 주지 않는 반인권적 재판(이대위)을 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이단감별사들이 자신들의 교권을 누리기 위해 처음부터 잘못된 결의를 한 것이다. 즉 재판의 절차를 준수하지 않고 일방적으로 원고의 말만 듣고 이단정죄를 하였던 것이다.

 

그러면 조선시대는 어떻게 재판을 하였나?

 

조선시대는 대륙법이나 영미법의 도움이나 영향을 받지 않고 자체적으로 법을 구성하고 재판을 한 것이다.  그러나 선조들의 재판은 합리적이고 공평함을 추구하였다. 조선시대 재판의 특징은 철저하게 당사자주의와 변론주의라 할 수 있다. 사실과 증거의 수집 제출 책임이 당사자에게 맡겨졌으며 재판의 중심은 당사자에게 주어졌다. 심리의 진행은 당사자들이 자신의 주장을 말로써 진술하도록 하는 구술주의를 원칙으로 하였다.

 

한국장로교 이대위, 원고의 진술만 중시하고 재판

 

예수의 재판 역시 구술주의였다. 빌라도가 예수에게 진술의 기회를 주었다.  조선시대의 재판에는 양당사자 모두가 참여하여 당사자 쌍방을 대상으로 하여 심리하는 쌍방심리주의를 취하였으며 양당사자에게 공평한 기회를 부여하였다. 그러나 한국장로교단의 이단재판은 양당사자가 아니라 원고만 참석하거나 원고의 자료만 갖고 피고없이 일방적으로 결정을 하는 것이다. 조선시대 심리재판의 절차는 소송의 심리개시, 사건의 실정심문, 증거문서의 제출, 증거문서의 조사와 확인에 대한 것을 취하였다.  그리고 최종변론의 기회도 주었다.

 

당시 원.피고는 함께 참여하여 당사자진행주의에 따라 자유롭게 자기의 주장을 펴며 공격 및 방어를 할 수 있었다. 또한 자신의 주장을 정당화하기 위하여 모든 증거자료를 제출했다. 증거로 문서가 제출되면 그 내용을 확인하고 원.피고로부터 서명을 받았다. 이 경우에 문서의 진위는 다툼의 대상이 되지 않는 즉 증명을 필요로 하지 않는 사실로 된다. 위조문서의 제출을 방지하기 위해 확인은 기본 절차였다. 

 

이처럼 서구법의 영향을 받지 않은 조선시대의 재판구조도 오늘날의 재판구조와 다를 바가 없다. 당시도 당사자주의, 증거주의, 공평주의, 변론주의가 있었던 것으로 적법한 절차를 중시하는 재판을 하였던 것이다. 유독 한국의 통합, 합동교단의 이대위만 원고의 진술과 증거에만 입각하여 판결을 하고 결정을 하는 것이다.

 

한국교단, 예수의 재판을 한다면 변론의 기회주지 않고 십자가 사형선고할 것

 

종교재판에서 빌라도도 예수에게 진술의 기회를 주었는데 한국장로교단의 이대위는 한국에 예수가 법정에 선다고 하더라도 바리새인들의 말만 듣고 예수에게 변론의 기회를 주지않고 사형선고를 할 사람들 이다.  이제 이대위의 이단정죄형태와 절차는 바뀌어야 한다. 반드시 당사자에게 변론의 기회를 주어야 할 것이다. 그래서 앞으로 이대위는 당사자주의, 변론주의, 증거주의, 절차주의를 채택하여 원고만 의존하는 종교재판은 사라져야 할 것이다.   


 
기사입력: 2016/11/18 [09:16]  최종편집: ⓒ lawnchurc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