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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법단체, 교회관련법보다 교회법을 다루어야
천주교의 버팀목은 교회법
황규학 (14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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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교회법학회들이 교회법신학과 교회법철학, 교회법정신, 타종교와의 비교법에 대한 면을 다루지 못하고 대법원의 판례수준만 다루고 있어 교회법성장을 하지 못하고 있는 상태이다. 즉 학문적으로 지속적인 발전을 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학회가 교회법학이 아니라 세속법의 일종인 교회관련법만을 다루고있기 때문이다. 이는 법과 신학을 전공한 학자들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법이라 함은 규칙, 법원칙과 기준들뿐만아니라 절차와 결정들을 포함하는 유기적인 몸체이다. 특히 교회법은 신학과 중세의 철학, 종교개혁자들의 신학과 정신, 그 이후 개신교단들의 헌법 등 전통성과역사성, 사회성을 동시에 갖고 있는 몸체로서 생각하고 접근해야 한다. 법은 생명력과 역동성이 있어야 한다. 동양의 경전은 그 내용이 이미 정지되어 있고, 오래 전에 이미 내용이 확정되었고 후세의 사람들이 할 일은 해석만 하면 된다는 태도를 갖고 있다. 한국의 교회법 역시 오래전에 확정되고 정지된 법의 해석만을 추구하고 있다. 그러나 보니 역동성과 생명력, 전체성을 상실하게 된다. 조항과 판례의 연구에 머물고 있다보니 법의 지엽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이다.   

 

즉 학회가 법의 몸체(a body of law)로서 법을 다루어야 하는데 규칙과 법조항, 일반 판례 수준 등으로 몸체가 아니라 손이나 발만 갖고 다루는 것이다. 황교안국무총리가 쓴 "교회가 알아야 할 법이야기"는 대법원판례의 해석에 불과하다.

 

교회법학자들은 실정법보다 교회법정신과 철학에 관심을 두어야

 

즉 현재 교회법학회가 법의 형식적이고 현상적인 면, 실정법적인 면만 다루고 교회법정신, 교회법신학, 교회법전통, 교회법철학 등 교회법정신에 대해서는 논의가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 실정이다. 학자가 없기 때문이다. 앞으로 교회법학자들은 실정법보다 교회법정신과 철학에 관심을 두어야 할 것이다. 이를테면 권징이나 교회재산문제라면 중세나 서구, 카톨릭은 어떻게 해결하였는지 비교법차원에서 다루어야 할 것이다.    

 

막스베버는 법은 합리적이고, 전통적이고 카리스마틱해야 한다고 했다. 합리적이라 함은 객관성과 공정성이 있어야 하고, 전통적이라 함은 오랜 관습과 역사성을을 포함해야 하고, 카리스마틱이라 함은 정신적 권위가 있어야 하는 것이다.  교회법도 권위가 있으려면 합리성과 전통성, 신학성이 있어야 한다. 

 

오늘날 개신교의 부패와 권위추락은 법의 합리성, 전통성, 권위성이 결여되어 있기 때문이다. 특히 종교재판의 타락은 법절차의 합리성이 결여되어 있는 것이다. 피고에게 기회를 주어야 하는데 원고의 말만 듣고 이단으로 정죄하는 것이다. 이러한 현상은 합리적인 기준이나 절차의 종교법체계가 구성되어 있지않기 때문에 법이 아니라 다수의 힘을 갖고 판단하는 것이다. 법의식의 부재에 기인한다. 

 

법의 폭력

 

이는 법의 폭력이다. 다수의 결의라는 힘으로 밀어부치는 것이다.  합법적 절차와 공정성이 없는 법집행은 대부분 독재들이 행하는 것으로 법을 수단으로 하여 자신들의 권력을 추구하는 법의 폭력성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이다. 현재 한국개신교의 가장 큰 문제점은 법의 폭력성이다. 약자의 인권이나 입장, 법의 정신과 절차를 전혀 중시하지 않는다.      

 

일단 이렇게 된 것은 제대로 된 교회법규칙, 종교재판규칙이 제대로 제정되어 있지 않고 대부분 규칙서 해석이나 설명, 다수의 결의에 머물고 있기 때문이다. 두번째 전통성이 있어야 하는데 한국의 장로교법은 1789년 미국선교사들이 갖고 들어온 교회규칙 이후 거의 학문적으로 발전을 하지 못했다. 이는 교회법학자들이 없기 때문이다. 

 

일반 교단에서는 학자들이 아니라 신학만을 전공한 목회자들이 교단헌법을 교정하고 추가하는 선에서만 그쳤을 뿐이다. 최근 교회법학회가 생겨났지만 대법원의 교회관련 판례수준 정도만 논의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는 교회법이 아니라 교회관련법이다. 교회법이 되려면 법과 신학이 만나야 하고, 신학안에서 법해석이 이루어져야 하고, 교회법의 역사, 철학이 동반되어야 한다. 

 

카톨릭이 흔들리지 않는 이유

 

카톨릭이 아무리 중세에 타락하고 부패했어도 지금까지 견고하게 버티는 것은 자체적으로 교회법이 기초를 형성하기 때문이다. 카톨릭은 교회국가차원의 법을 갖고 있다. 현재 개신교의 교단헌법은 개교회자체의 정관보다 힘이 없는 실정이다. 개교회의 법이 교단의 법을 압도하는 상황에서 개신교의 권위는 이미 추락한 것이다. 법적으로 교단이 우위에 있어야 하는데 개교회에 종속되어 있는 교단은 교단이라기 보다는 일종의 협의체 성격인 것이다. 중세의 카톨릭은 카톨릭이라는 하나의 종교국가가 국가를 이끌고 갔을 정도이다. 중세에 있어서 교회법은 신학과 구별되지 않았다. 토마스아퀴나스 같은 학자는 신학자이면서도 교회법학자 였다.

 

그러나 개신교는 종교개혁이후에 토마스아퀴나스의 법철학이나 신학과 단절을 해왔고, 종교개혁시대 학자들은 타락한 중세교회의 교회법을 무시하고 오히려 국가법의 준수가 하나님나라의 실현이라고 판단했다. 국가법을 중세교회법으로 대치하였던 것이다. 그들은 중세교회회법사상과 단절을 했다. 그러다 보니 개신교인들은 세속법정의 문을 계속 두드리고있다. 그러나 카톨릭교도들은 거의 세속법정에 갈 일이 없다. 오히려 카톨릭이 성경적이고 개신교가 비성경적으로 가고 있다. 비성경적으로가다 보니 계속 권위가 떨어지고 있다.  

 

종교개혁이후 교회법 발전 없어

 

종교개혁이후 서구는 교회법을 만들어 나름대로 개신교의 전통을 이어왔지만 교회법의 발전이 전혀 없었다. 루터는 음악을 좋아하고 미술을 좋아하지 않다보니 개신교는 성화가 거의 발전을 하지 않은 것과 마찬가지 이다. 법도 마찬가지이다. 종교개혁자들이 중세의 교회법을 갖고 공격하고 국가법을 우선시하다 보니 개신교에서는 교회법발전이 거의 없었다. 

 

개신교에서는 개신교법정신, 개신교법철학, 개신교법사회학, 개신교법신학, 개신교법제사, 개신교법과 사회법의 관계 등이 학문적으로 전혀 발전하지 않았다. 서구는 그래도 스코틀랜드나 미국 등 나름대로의 교단정신과 철학이 반영된 교단헌법을 만들고 이에 대한 해석서, 사회법과의 관계 등에 대해서 계속 학문적 활동을 해서 교회법의 발전을 일으켰다. 유럽만 해도 개신교회법이 많이 발전되었다.  

 

한국의 교회법

 

그러나 한국은 1789년 미국장로교헌법의 복사판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역사와 현실, 철학을 기초로 하는 교회법이 없는 것이다. 거대한 교단은 있는데 이를 지탱해나갈 법규범이 너무 약한 것이다. 

 

교회법이라 함은 신학과 전통, 성서의 정신, 종교개혁자들의 정신, 그 나라 신앙의 역사성이 뒷받침 되어야 하는데 정관이나 규칙정도에만 머무르고 있고, 교회법 학과목이나 학자들이 많지 않다는 데 문제점이 있다. 교회법철학과 교회법역사가 없다. 학과목도 없다. 그런데다가 교회법학자들이 세속적인 법관점에서 법을 접근하다 보니 교회법과 민법의 구분을 하기 어려운 상태이다. 그러나 교회법학자들이 연구하는 민법은 교회법이 아니고 교회관련차원에서 연구하는 것이다. 앞으로 교회법학자들은 교회관련판례나 교회관련법에 집중을 할 것이 아니라 개신교철학과 정신이 깃든 개신교회법자체에 치중을 해야할 것이다.   

 

그러므로 교회법은 신학과 법학을 한 사람들이 접근할 영역이지, 법대교수나 변호사들이 접근할 영역이 아닌 것이다. 법학이 없는 교회법연구는 맹목적이고, 신학이 없는 교회법연구 역시 공허하다. 대법원의 판례해석, 재산법, 세무법, 행정법 등 일반 교회관련사례만 다루는 것은 교회관련법이지 교회법이 아닌 것이다.  

 

교회법연구, 전통과 신학 포함해야

 

교회법이라함은 현실을 배제할 수 없지만, 전통과 신학도 배제할 수 없는 것이다. 따라서 교회법은 비전문가들이니 신학비전공자들의 전유물이 되어서는 안될 것이다. 그들은 교회관련법은 다루지만 교회법은 손대기 어렵기 때문이다. 교회법은 신학, 성서, 전통, 서양법제사, 로마법의 영향, 종교개혁시대정신, 영미법, 대륙법의 관련성 등 그 이후의 논의 과정과 연구 등을 취급해야 할 것이다. 서구의 법은 교회법의 영향을 받으면서 성장해왔기 때문이다. 특히 어거스틴이나 아퀴나스는 세속법에 많은 영향을 주었던 인물이다. 미국은 노동법이나 인권법 입법에 여전히 목회자들이 참고인으로서 참여하고 있다.            

 

개신교가 사회에서 주변역할을 하고 점점 무너져 내리는 것도 법의 기초가 너무나도 약하기 때문이다. 개신교안에 법의 기초가 튼튼하다면 세상법정으로 나가지 않았을 것이다. 현재의 개신교법만을 갖고서는 교회내부의 문제를 해결하기에는 역부족이다. 개교회들이 교회안의 문제를 계속 세상법정으로 가져간다면 개신교의 권위는 계속 추락할 것이고, 가이사법정에게 모든 권위를 다 내준 셈이 될 것이다. 

 

이제 교회법이 대법원의 판례수준에서 다루는 것에 벗어나 성서의 법(구약), 교회법의 역사와 전통, 로마법과의 관계, 영미법과의 관계를 다루어야만 교회법학회로서의 역할을 할 것이다.  

 

      


 
기사입력: 2016/11/25 [05:45]  최종편집: ⓒ lawnchurc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