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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법의 근거와 존재기반은 성경이다
성경의 정신이 사라진 법은 바리새인의 율법으로 전락
황규학 (1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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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법의 근거와 존재기반은 성경이 되어야 한다. 그러나 최근 개신교회의 노회와 총회를 보면 성경의 정신은 사라지고 교회법의 규칙과 조문만 남아 갈등과 대립이 끊이지를 않고 있는 상태이다. 이를테면 예수병원건에 대한 해석도 정신은 사라지고 규칙일변도적인 해석(산하기관, 유관기관)때문에 혼란이 끊이지 않고 있는 것이다. 정관을 변경했다가 취소하는 사태가 발생하는 것이다.

 

법정신이 사라지면 형식적인 율법으로 전락

 

율법에도 그 이면에 있는 신의 법정신이 사라지다 보니 규칙과 조항을 갖고서 예수를 죽이는 사태가 발생한다. 안식일에 일을 하지 않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일을 해서라도 병을 고치는 것이 중요한데 문자에만 촛점을 두다 보니 문자는 살리지만 생명을 죽이는 것이다. 실정법의 약점은 정신이 사라지다 보다 조문에 얽매어 생명과 정신을 죽이고 있는 것이다. 불행하게도 한국교회가 정신이 사라진 규칙과 조항, 문자, 과거의 행적에 얽매어 상대방을 죽이는데 앞장 서고 있다. 한국교회가 회복되기 위해서는 교회법의 정신이 회복되어야 한다.  

     

교회법은 성경과 사도적 전승을 통하여 만들어졌다. 바울에게 있어서 법개념은 조문을 중시하는 율법이 아니라 믿음과 은총에 힘입은 사랑의 실천을 통하여 완성된 율법이었다. 의인은 율법을 준수하면서 사는 것이 아니라 믿음과 사랑을 통한 율법을 완성하면서 살아가는 것이었다.

 

이상적인 법

 

예수 역시 율법을 폐하러 온 것이 아니라 율법을 완성하려고 왔다. 이상적인 법은 자연법과 실정법이 일치할 때 완성되듯이 이상적인 교회법은 성경의 정신과 조문(규칙, 조항)이 일치할 때완성된다. 그러나 성경의 정신이 사라진 조문은 율법적 기능을 하게 되고 그리스도의 생명의 정신을 죽여 가이사의 나라의 법으로 전락하게 된다. 한국교단의 문제는 대부분이 법정신과 법준수의 실패에서 온다.

 

법정신이 사라진 상태에서 법조문만 갖고 해석을 하다보니 서로의 다른 입장 차이 때문에 티격태격하게 되는 것이다. 교회법을 통한 성경의 정신이 드러나지 않는 한, 조문해석에서 벗어나지 못하기 때문에 앞으도로 갈등의 곬은 깊어질 것이다. 규칙과 교단헌법의 해석에 성경적 정신과 기준이 없는 한, 사람이 바뀔 때마다 다르게 해석이 될 것이다.

 

아전인수격으로 전락한 교회법

 

그러다 보면 교단관계자들의 조문의 해석이나 바리새인들의 율법의 해석이 별 차이가 없게 된다. 법정신이 사라지다 보니 아전인수격으로 해석을 하는 것이다. 그러다 보면 예수를 죽이거나 예수의 정신을 죽이는 현대판 바리새인들이 활개를 치게 된다. 교단의 형식적인 법의 권위를 갖고 임시당회장으로 특정교회에 와서 신도들을 제명하고 처벌하거나 소명기회도 주지않고 결정하는 것은 바리새적 율법주의자로 전락한 것이다. 형식적인 법의 노예가 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최근의 한국교회법은 교회의 영적 생활을 돕기보다는 오히려 방해하는 차원에서 역할을 하였다. 신앙적 행위가 아니라 자신의 권리실현을 위한 인간적 행위에 관점을 둔 것이다. 성경의 법정신은 "나 이외에 다른 신을 네게 두지 말라"와 "네 이웃을 네 몸같이 사랑하라"이다. 즉 "자신보다 하나님과 이웃을 사랑하라"는 이타적인 사랑을 추구하고있다.

 

그러나 오늘 우리의 문제는 이웃이나 하나님보다 혈연, 지연, 학연, 파당을 더 사랑하는 쪽으로 법을 해석하고 있는 것이다. 서구의 법정신은 약자의 권리실현을 위해서 주어졌지만 동양의 법정신은 지배자의 권리실현을 위해서 주어졌다. 정신이 죽은 법은 항시 강자가 약자를 제압하는 도구이다.      

 

교회법전의 원천은 성경    


카톨릭에서는 성경과 전승을 근거하여 교회법전을 만들었다. 이를 교회법전의 성경적 法源이라고 한다. 성경이 법의 원천인 것이다. 먼저 교회의 소송법은 고린도 전서 6:1-6 이 주교의 심문의 근거가 되었다.

 

1.너희 중에 누가 다른 이와 더불어 다툼이 있는데 구태여 불의한 자들 앞에서 고발하고 성도 앞에서 하지 아니하느냐 2.성도가 세상을 판단할 것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세상도 너희에게 판단을 받겠거든 지극히 작은 일 판단하기를 감당하지 못하겠느냐 3.우리가 천사를 판단할 것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그러하거든 하물며 세상 일이랴 4.그런즉 너희가 세상 사건이 있을 때에 교회에서 경히 여김을 받는 자들을 세우느냐 5.내가 너희를 부끄럽게 하려 하여 이 말을 하노니 너희 가운데 그 형제간의 일을 판단할 만한 지혜 있는 자가 이같이 하나도 없느냐 6.형제가 형제와 더불어 고발할 뿐더러 믿지 아니하는 자들 앞에서 하느냐 (고전6:1-6)
 
교회의 형법은 고린도전서 5:1-5절이 원천이다.


1.너희 중에 심지어 음행이 있다 함을 들으니 그런 음행은 이방인 중에서도 없는 것이라 누가 그 아버지의 아내를 취하였다 하는도다 2.그리하고도 너희가 오히려 교만하여져서 어찌하여 통한히 여기지 아니하고 그 일 행한 자를 너희 중에서 쫓아내지 아니하였느냐 3.내가 실로 몸으로는 떠나 있으나 영으로는 함께 있어서 거기 있는 것 같이 이런 일 행한 자를 이미 판단하였노라 4.주 예수의 이름으로 너희가 내 영과 함께 모여서 우리 주 예수의 능력으로 5.이런 자를 사탄에게 내주었으니 이는 육신은 멸하고 영은 주 예수의 날에 구원을 받게 하려 함이라(고전5;1-5)
 

교회의 직무는 사도행전 1:15-26절이다.


15.모인 무리의 수가 약 백이십 명이나 되더라 그 때에 베드로가 그 형제들 가운데 일어서서 이르되 16.형제들아 성령이 다윗의 입을 통하여 예수 잡는 자들의 길잡이가 된 유다를 가리켜 미리 말씀하신 성경이 응하였으니 마땅하도다 17.이 사람은 본래 우리 수 가운데 참여하여 이 직무의 한 부분을 맡았던 자라 18.(이 사람이 불의의 삯으로 밭을 사고 후에 몸이 곤두박질하여 배가 터져 창자가 다 흘러 나온지라 19.이 일이 예루살렘에 사는 모든 사람에게 알리어져 그들의 말로는 그 밭을 아겔다마라 하니 이는 피밭이라는 뜻이라) 20.시편에 기록하였으되 그의 거처를 황폐하게 하시며 거기 거하는 자가 없게 하소서 하였고 또 일렀으되 그의 직분을 타인이 취하게 하소서 하였도다  21.이러하므로 요한의 세례로부터 우리 가운데서 올려져 가신 날까지 주 예수께서 우리 가운데 출입하실 때에 22.항상 우리와 함께 다니던 사람 중에 하나를 세워 우리와 더불어 예수께서 부활하심을 증언할 사람이 되게 하여야 하리라 하거늘 23.그들이 두 사람을 내세우니 하나는 바사바라고도 하고 별명은 유스도라고 하는 요셉이요 하나는 맛디아라 24.그들이 기도하여 이르되 뭇 사람의 마음을 아시는 주여 이 두 사람 중에 누가 주님께 택하신 바 되어 25.봉사와 및 사도의 직무를 대신할 자인지를 보이시옵소서 유다는 이 직무를 버리고 제 곳으로 갔나이다 하고 26.제비 뽑아 맛디아를 얻으니 그가 열한 사도의 수에 들어가니라 (행1:15-26)

 

교회의 신분구분은 사도행전 6;1-6의 예루살렘교회의 식탁봉사자와 사도행전 14:23절에 나오는 것이 원천이다.

 

1. 그 때에 제자가 더 많아졌는데 헬라파 유대인들이 자기의 과부들이 매일의 구제에 빠지므로 히브리파 사람을 원망하니 2.열두 사도가 모든 제자를 불러 이르되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제쳐 놓고 접대를 일삼는 것이 마땅하지 아니하니 3.형제들아 너희 가운데서 성령과 지혜가 충만하여 칭찬 받는 사람 일곱을 택하라 우리가 이 일을 그들에게 맡기고 4.우리는 오로지 기도하는 일과 말씀 사역에 힘쓰리라 하니 5.온 무리가 이 말을 기뻐하여 믿음과 성령이 충만한 사람 스데반과 또 빌립과 브로고로와 니가노르와 디몬과 바메나와 유대교에 입교했던 안디옥 사람 니골라를 택하여 6.사도들 앞에 세우니 사도들이 기도하고 그들에게 안수하니라(행6;1-6)

각 교회에서 장로들을 택하여 금식 기도 하며 그들이 믿는 주께 그들을 위탁하고(행14:23)


공의회의 원천은 사도행전 15:28-29의 예루살렘 공의회가 그 근거가 된다.

 

성령과 우리는 이 요긴한 것들 외에는 아무 짐도 너희에게 지우지 아니하는 것이 옳은 줄 알았노니 29.우상의 제물과 피와 목매어 죽인 것과 음행을 멀리할지니라 이에 스스로 삼가면 잘되리라 평안함을 원하노라 하였더라(행15:28-29)

 

교계제도의 구조는 사도행전 16:4, 14:22 이다.

 

여러 성으로 다녀 갈 때에 예루살렘에 있는 사도와 장로들이 작정한 규례를 그들에게 주어 지키게 하니

 

교역자의 보수는 고린도전서를 성경의 근원으로 두고 있다.
 

5.우리가 다른 사도들과 주의 형제들과 게바와 같이 믿음의 자매 된 아내를 데리고 다닐 권리가 없겠느냐  6.어찌 나와 바나바만 일하지 아니할 권리가 없겠느냐 7.누가 자기 비용으로 군 복무를 하겠느냐 누가 포도를 심고 그 열매를 먹지 않겠느냐 누가 양 떼를 기르고 그 양 떼의 젖을 먹지 않겠느냐 8.내가 사람의 예대로 이것을 말하느냐 율법도 이것을 말하지 아니하느냐 9.모세의 율법에 곡식을 밟아 떠는 소에게 망을 씌우지 말라 기록하였으니 하나님께서 어찌 소들을 위하여 염려하심이냐 10.오로지 우리를 위하여 말씀하심이 아니냐 과연 우리를 위하여 기록된 것이니 밭 가는 자는 소망을 가지고 갈며 곡식 떠는 자는 함께 얻을 소망을 가지고 떠는 것이라 11.우리가 너희에게 신령한 것을 뿌렸은즉 너희의 육적인 것을 거두기로 과하다 하겠느냐 12.다른 이들도 너희에게 이런 권리를 가졌거든 하물며 우리일까보냐 그러나 우리가 이 권리를 쓰지 아니하고 범사에 참는 것은 그리스도의 복음에 아무 장애가 없게 하려 함이로다 13.성전의 일을 하는 이들은 성전에서 나는 것을 먹으며 제단에서 섬기는 이들은 제단과 함께 나누는 것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14.이와 같이 주께서도 복음 전하는 자들이 복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명하셨느니라 15.그러나 내가 이것을 하나도 쓰지 아니하였고 또 이 말을 쓰는 것은 내게 이같이 하여 달라는 것이 아니라 내가 차라리 죽을지언정 누구든지 내 자랑하는 것을 헛된 데로 돌리지 못하게 하리라(고전9:5-15)

 

17. 내가 스데바나와 브드나도와 아가이고가 온 것을 기뻐하노니 그들이 너희의 부족한 것을 채웠음이라 18.그들이 나와 너희 마음을 시원하게 하였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이런 사람들을 알아 주라(고전16:17-18)
 

이처럼 교회법은 성경을 그 원천으로 삼고 있고, 사도전승의 전달체계속에서 그 내용을 계속 변화시키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성경의 법정신이 없고 율법적 조문체계만 남다보니 소명기회도 주지 않고 교리재판을 하거나 총회석상에서 재판절차도 없이 다수결의로 회원을 제명한다. 이미 결정된 내용을 재판절차도 없이 다시 철회하는 것도 법정신의 실종이다. 한국교단은 다수결이 법을 앞서고 있다. 성서를 토대로 한 교회법정신의 실종에서 오는 것이다.

 

교회법이란 성경을 해석하고 구체적인 현실에 적용하는 교단총회의 결정된 내용을 골자로 해서 교회 구성원들의 생활규범을 법제화한 체계라고 볼 수 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그러한 입법구도가 어떤 식으로 실현되는지, 그리고 그것은 신학적으로 정당한지를 살펴보는 것이다. 

 

따라서 교회법의 법원은 성경이기 때문에 조문이면의 성경적 정신을 중시해야 하고, 해석자나 입법자는 성경의 정신을 최대한 구현해 내는데 목적을 두어야 할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항시 자신의 권리, 지인의 권리, 학연의 권리, 이해관계의 권리유무에 따라 해석을 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개신교의 법적인 권위가 계속 추락하는 것이다. 법의 기준과 잣대가 지연, 학연이 되다 보니 성경의 정신이 사라지고, 바리새인의 해석과 판단의 율법적 권위만 남게 되는 것이다.      


 
기사입력: 2016/12/02 [05:21]  최종편집: ⓒ lawnchurc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