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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법 vs. 약육강식법
신법에 토대를 두지 않는 교회법은 약육강식법으로 전락
황규학 (2118)

교회법의 구분

 

교회법은 일종의 신법으로 자연법적인 요소와 실정법적인 요소가 있다. 자연법적인 요소라 함은 구원이나 신앙과 관련한 천상의 나라를 추구하는 영적인 법이고, 실정법 요소라함은 현존 가시적 교회의 질서를 유지하기위해서 자체적으로 만든 규범의 총체이다. 교리편, 예배편은 모두 신앙내지는 신에 대한 경배와 관련하기 때문에 자연법적 신법이고, 정치편이나 권징편은 교회의 조직과 사람과 관련한 법이기 때문에 실정법적 신법이다.

 

이처럼 교리, 정치, 권징, 예배의식편은 신법의 일종으로 자연법적 신법과 실정법적 신법으로 나뉠 수 있다. 자연법이란 하나님이 피조물의 본성에 새겨주신 영원법의 일부를 인간이 인식한 것으로서, 보편적이며 변하지 않고 필수적인 법으로서 마땅히 이 세상에서 구현되어야 할 질서이다. 이른바 천부인권같은 인간의 존엄성같은 것이 자연법에 해당한다. 이에 비해 하나님의 실정법은 초자연적인 계시에 의해 주어진 구원을 위한 법으로서 신도들이 마땅히 하나님의 의도와 정신을 파악하고 살아가기 위한 신의 법이다.   

 

신법이란?

 

신법에 대해서 주장한 대표적인 인물은 마누엘 예수 아로바콘데(Manuel Jesus Arroba Conde)이다. 그는 "일반적으로 신법이라 함은 하나님께 원하셨던 바가 교회를 통해서 법적 효력을 갖게 된 것으로 이해된다. 신법은 하나의 법체계로서 교회의 재량권에 귀속되지만, 하나님께서 원하셨던 것인 만큼 교회는 그것을 변경시킬 수 없다"며 신법은 하나님이 가시적인 교회에 요구한 법체계라고 말하고 있다. 

 

교회법에 있어서 신법의 적용은 모든 시대와 모든 민족의 구원을 겨냥한 하나님의 의도를 실현하려는 것이고, 교회법은 신법에 기초를 두어야 하고, 그 해석은 역사의 흐름에 따라 변할 수 있고 거기에서 교회법은 항상 개혁된다(lege ecclesiae semper reformandae)라는 명제의 근거를 자리 잡게 되는 것이다.

 

요약하면 교회법은 신의 의도가 반영된 신법을 기초로 하여 형성되지만 교회법은 역사와 시대의 흐름속에서 항시 변화되고 개혁되어야 하는 것이다. 즉 불변하는 자연법적 신법은 변해서는 안되지만 실정법적 신법은 항시 사회에 융통성있게 변해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신법이 상실된 교회법은 가이사나라의 법보다 더 추악하게 된다. 현재 한국교회는 가이사법정에 신성한 교회의 권위를 모두 내주고 말았다.

 

라디슬라스위르시(Ladislas Orsy)는 "어느 시대이건 교회법이 하나님에 대한 당대의 인식을 상당히 반영하고 있다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예수께서는 율법 학자들과 율법 전문가들이 가지고 있던 하나님상을 바로잡는데 생애의 대부분을 보내셨다. 우리는 지난 역사에서 여러 차례 겉으로 보기에는 냉혹하고 비상식적인 법들을 공동체에 부과하고 시행했던 사람들을 모두 사악하거나 타락한 사람들이라고 생각해서는 안된다. 그들 대부분은 자신들이 하나님께봉사한다고 확신하고 있었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그들과 동일한 사고방식을 지니고 계신다고 생각하였다"며 교회법학자들도 신법을 반영하려고 최대한 노력했다고 주장했다.

 

개신교단법의 현실, 신법보다는 인간적 상황반영  

 

그러나 개신교의 현실은 신의 정신보다 지연, 학연의 의도를 반영하고 있다. 특히 인간의 의도는 재판국의 판결에 절실히 나타나고 있다.  기준과 원칙없이 국원에 따라 수시로 판결이 바뀌고 교단헌법도 하나님보다는 특정인들의 의도만 반영된다. 신법이 사라진 교회법이기 때문이다.  교회법은 신법에 기초해야 한다.    

 

교회의 가르침이나 법은 그리스도의 법과 정신에 기초

 

역사적으로 신법에 대한 교회법의 해석이 변할 수 있음은 신법에 대한 인식과 해석에 관한 문제로 연결것이다. 교회의 가르침이나 법은 그리스도의 법과 정신에 기인한다. 신법에 토대를 두면서 교회법조문이라는 구체적인 형태를 띤 계명들은 이미 효력을 발휘하고 있는 하나님의 법규를 해석하는데 지나지 않는 것이다. 신법에 대한 해석은 구체적으로 총회에서 총대들의 결의를 통해서 교회법에서 드러난다. 신의 정신과 의도라는 신법은 인간이 만든 교회법을 통하여 표현된다. 최대한 신의 의지를 반영하여 교회법을 기초하는 것이다. 그럴때 자연법적 신법은 실정법적 신법과 연결이 되는 것이다. 

 

신법은 불변, 교회법은 변화

 

그러므로 신법은 그 자체로 변할 수 없는 불변의 진리체계이다. 그래서 실정법의 차원에서 변경을 하더라도 그 기본 토대는 변해서는 안되는 것이다. 신법은 오직 하나이다. 토마스아퀴나스는 신학대전 II부 I편 제91문 '법의 구분'의 제 5장에서 '신법은 오직 하나이어야 하지 않겠는가'라는 소제목으로 "교회는 현상적인 면에서 신법의 적용의 변화와 개혁을 가할 수 있지만 신법의 근간은 여전히 하나이고 불변"이라고 주장했다. 즉 시대에 따라서 실정법적인 법규는 바뀌어도 신법의 실체는 바뀌지 않는다는 것이다. 즉 사람은 바뀌어도 하나님은 불변하기 때문이다. 오늘날 교회법이 자주 현실에 따라 개정되고 삭제되고  변하고 있지만 근본적인 성서의 정신과 하나님의 의도는 바뀌어서는 안된다. 너무 교회법이 자주 변하면 불변하는 신의 의도와 정신은 사라지게 된다. 

 

장로교단의 헌법 수시로 변해

 

지금 장로교단의 헌법을 보면 너무 자주 바뀌게되고, 신법이나 성서의 정신, 교회사의 전승, 선조 신앙인들의 정신보다는 세상법을 가져와서 적용하기 때문에 누더기 헌법이 되어 버렸다. 이는 신법의 정신에서 벗어나기 때문에 가이사나라의 법보다 못한 법으로 전락하는 것이다. 자신들이 만든 교회법도 인정하지 못하다 보니 가이사나라의 법정에 호소하게 되고 가이사법정은 자신들이 만든 교회법도 준수하지 않는다며 비웃고 있다. 교회법의 권위추락은 가이사법정에 가는 순간에 전락한다. 

 

신과 성경의 정신이 반영되지 않고 인간의 의도, 가이사나라의 법정신이 반영되다 보니 가이사법정에 자주 호소하게 되고 교회법의 권위가 사라져 무질서하게 된다. 교회자체적으로도 자신들이 만든 교회법을 준수하지 않아 세상법정으로 가는 일들이 비일비재하고 세상법정은 교회법준수 절차의 문제점을 계속 판단하고 있다. 신법이 반영되지 않은 교회법이기 때문에 가이사법정에 모든 권위를 내주고 있는 것이다.       

 

약육강식법

 

실제로 진리의 성령께서 일깨워주시고 지탱하여 주신다는 신앙감각이 있다면 하나님의 백성들은 흔들리지 않을 것이고, 교회법을 통한 신법과 성서의 법정신을 구현해 내는데 앞장서게 될 것이다. 불행하게도 진리의 영은 사라지고 인간의 영만 남게 되고, 신의 권위는 사라지고 교단의 권위만 남게 되는 것이 오늘의 현실이다. 회개를 한다고해도 용서하지 못하는 것이 오늘의 현실이라면 이는 신법이 사라진 교회법일 것이다. 불변의 신법이 사라진 교회법은 결국 신의 권리보다 사람의 권리에 편승하는 법으로 강자만 살고 약자만 희생을 당하는 약육강식법으로 전락할 것이다.       


 
기사입력: 2016/12/04 [09:56]  최종편집: ⓒ lawnchurc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