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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VERND MOON은 '재림주'의 문
탁지일, 원리강론, REVERND MOON 여과없이 인용
황규학 (3098)
▲     © 황규학

 

탁지일교수가 인용한 REVERND MOON 이라고 쓰여있는 책은 '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에서 발행한 "세상의 치유: 문선명의 가르침과 생애에 대한 소개" 이다. 여기서 REVERND MOON 은 재림주로서의 문이다.

 

이 책은 주로 문선명에 대해서 REVERAND MOON이라는 표현을 잘 사용한다.  탁지일은 이 책의 내용을 그대로 인용하면서 "그는 통일교는 문선명 자신이 길을 가는 결정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고 했다. "The unification church explains his decision to go his own way as follows;" 

 

일제통치말엽에 문선명은 다른 기독교인들을 접촉해서 지상에 하나님의 왕국을 세우기 위해 그들과 함께 일을 했다. 미국기독교선교사들은 이러한 젊은 선생의 말을 들었고, 그를 지방설교가로서 무시했다. 그들 회원과 함께 한 한 젊은이의 호소에 시기하는 한국목사들은 문선명을 거절했고 잘못된 교리를 가르친다고 그를 비난했다. 기독교교회들은 문선명을  수용하는데 실패했고, 존경하는 문선명(REVERAND MOON)은 개척자의 외로운 길을 걸어가야 한다고 깨달았다. 

 

 

▲     © 기독공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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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REVERAND 를 붙이는 것은 예수가 실패한 세상을 구원할 재림주이기 때문

 

이 책은 문선명 찬양일색이며 문선명을 제2의 재림예수라 판단하기 때문에 인용할 가치가 있는 책인지 우선 고려해야 했다. 특히 문선명앞에 REVERAND 를 붙이는 것은 그가 예수가 실패한 세상을 구원할 재림주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인용하는 사람은 재림주로서의 REVERNAD 표현을 삼가해야 했다. 그러나 탁지일은 재림주가 한국에서 태어난다는 원리강론의 내용을 논문 맨 앞에 싣고 있어 단순한 인용이 아님을 알게 된다. 그의 논문 앞장은 문선명이 재림주로서 한국에 올 것이라는 원리강론의 내용을 그대로 인용하고 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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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내용중 문선명 파트에서는 문선명을 REVERAND MOON으로 그대로 인용하고 있다. 여기서 REVERAN MOON은 재림주로서의 REVERAN MOON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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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므로 탁지일은 이 책을 처음부터 인용해서는 안되는 책이었다.  그리고 굳이 문선명의 생애를 다루는데 알려진 글이 너무 많이 있기 때문에 일반적으로 누구나가 다 알고 있는 내용을 인용할 필요가 없었다. 탁지일은 논문 맨 앞에 이대복처럼 원리강론 대신 성경을 인용해야 했고, 원리강론에 대해서 쓰려면 비판을 해야 했고, 문선명을 인용할 시 REVERAND MOON 이라는 표현을 쓸 필요가 없거나 다른 책을 인용해야 했고, 위에서 보다시피  REVERAND MOON 을 활자체를 크게 해서 논문형시에 맞지도 않는 표기를 할 이유가 없었다. 통일교의 참부모와 원리강론, 가족에 대해서 한 줄도 비판하지 않아 사실상 통일교홍보논문이 되어 버렸다.     

 

통일교도 논문, 탁지일 논문과 다를 바 없어

 

통일교 산하 신학교인 청심신학대학원대학교 석사학위 학생의 논문을 보면 탁지일의 논문과 별 차이가 없음을 알게 될 것이다. 김화영이라는 학생도 통일교 가정에 대해서 논문을 썼다. 통일교의 가정을 있는 그대로 홍보하고 있다.  

 

▲     ©법과 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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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논문도 통일교가정과 원리강론에 대한 한 문장의 비판도 없다. 그는 통일교도 이기 때문이다. 탁지일은 "통일교의 참부모 위치의 확립(1960-1992)"에 대해서도 한 줄도 비판하지 않았고  통일교의 참부모 위치를 홍보하는데 급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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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청심대학원생 석사논문과 부산장신대교수의 박사논문이 통일교를 홍보하는데 한 문장의 비판도 없어 별 차이가 없다. 

 

탁지일이 해결해야 할 문제

 

그러므로 탁지일이 해결해야 할 문제는 1) 논문이 왜 두개 인지, 2) 원리강론을 논문 맨 앞에 실은 이유가 무엇인지, 3) 문선명에 대해 'REVERAND MOON'을 왜 그대로 인용하였는지, 4) 문선명관련 글만 부각해서 활자체를 왜 크게하였는지, 4) 통일교의 이상가족에 대해 왜 한 줄도 비판을 하지 않았는지, 5) 원리강론을 왜 유독 부각시켰는지, 6) 통일교와 타협은 없었는지, 7) 타협이 없었다면 한국에서 왜 박사학위 제출논문 파일을 제출하지 않고 문선명 글을 부각한 다른 논문을 제출했는지, 7)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왜 허위사실을 말했는지 이다. 부산장신대는 이 논문이 한국교회와 부산장신대에 무슨 유익을 주는지, 부산장신대의 정체성과 맞는지, 교회사가교수로서의 논문으로 적당한지 해결해야 할 것이다.     

 

탁지일이 인용한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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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문선명에 대해서 항시 앞에 그를 존칭하는 REVERAND를 그대로 붙였고, 문선명을 제2의 재림 예수라고 언급을 한다. 이 책은 예수가 실패한 세상을 문선명이 다시 육체적으로 오신 재림 예수라 판단하기 때문에 그에 대해서 항시 REVERAND 라는 존칭어를 붙인다. 육체로 오신 메시야로서 인류를 구원할 신이기 때문이다. 일반적인 성직자에게 붙이는 것과 다른 의미를 갖고 있다. 재림주로서의 REVERAND MOON 이다.       

 

Christ's Return and the Achievement of Lasting World Peace

 

Following Jesus' death and resurrection, God began to work through the Christians as the second Israel, to prepare for the second coming of the Messiah. For the next four centuries, Christians suffered, as had the Israelites in Egypt. Many were boiled in oil, fed to lions or burned alive. Despite this severe persecution, the Christians did not abandon their faith. On the contrary, their faith deepened and they became dedicated believers committed to spreading Jesus' teachings.

 

예수의 죽음와 부활이후에 하나님은 메시야의 재림을 준비시키기 위하여 두번째 이스라엘처럼 기독교인들을 통하여 일하시기를 원했다. 다음 4세기동안 기독교인들은 이집트에 있는 이스라엘사람들처럼 고통을 당했다. 많은 사람들이 끓는 기름에 던져졌고, 사자와 맹수들에 의해 죽었다. 이러한 심한 박해에도 불구하고 기독교인들은 그들의 신앙을 포기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들의 신앙은 깊어졌고 그들은 예수의 가르침을 세상에 전파하기 위하여 헌신된 신앙인들이 되었다.    

 

For 2,000 years Christianity went through a historical course parallel to the 2,000 year history of biblical Israel. Today the cycle is complete and Christian history has reached its consummation. But Christian civilization is now collapsing. Why? Many Christians believe that the present time is the time of the second coming of Christ, when God will act decisively once again. Will the second coming be on the clouds? Clearly not.

 

2000년동안 기독교는 성서에 나오는 이스라엘 역사의 2000년처럼 동일한 역사적 행도를 겪었다. 오늘날 그 사이클이 완성되고 기독교역사는 정점에 달했다. 그러나 기독교인들은 점점 붕괴되어 가고 있다. 왜? 많은 기독교인들은 하나님이 결정적으로 다시 한번 행하실 현재의 때가 예수의 재림의 때라고 믿고 있다. 구름속에서 제2의 재림이 있을 것인가? 분명하지는 않다.    

 

Because Adam and Eve did not fulfill God's ideal, and because Jesus was prevented from bringing God's kingdom on earth (as a result of being rejected by his contemporaries), the Messiah will come again as the physical third Adam to complete Jesus' task. Since the Messiah is to be the example of perfected individuality -- thereby fulfilling the first blessing -- he must be born on earth, as were Adam and Jesus. To fulfill the second blessing, he must marry, and establish an ideal family with his bride. He must also, in a practical way, guide humanity in overcoming the conflicts between nations, races, religions and cultures, finally bringing about a world of lasting peace.

 

아담과 이브가 하나님의 이상을 수행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리고 예수가 지상에 하나님의 왕국을 가져오는데 방해받았기 때문에 메시야는 예수의 일을 완수하기 위하여 육체적인 세번째 아담의 모습으로 다시 오실 것이다. 메시야는 첫번째 축복을 이행할 완전한 개체성의 모범이기 때문에 그는 아담과 예수처럼 지상에 태어나야 한다. 두번째 축복을 이행하기위하여 그는 결혼을 해야하고, 그의 신부와 함께 이상적인 가정을 확립해야 한다. 그는 실제작인 방법에 있어서 국가와 인종, 종교, 문화의 갈등을 극복하고, 마지막으로 지속적인 평화를 가져오기 위하여 인류를 안내해야 한다.    

 

The Divine Principle teaches that the Lord of the Second Advent was born around 1920 in Korea. But as with Jesus 2,000 years ago, he can expect to meet persecution and misunderstanding. In fact, Jesus himself warned of this when he asked: "When the Son of man comes, will he find faith on earth?"

 

원리강론은 두번째 오실 재림의 주가 1920년에 한국에서 태어났다고 가르친다. 그러나 2000년전의 예수처럼 그는 오해와 박해를 받을 수 있다. 실제로 예수 자신은 "하나님의 아들이 언제 오십니까, 지상에서 믿음을 발견할 수 있습니까?라는 질문을 받았을 때 이러한 것들을  경고했다.  

 

The Wilderness Course

 

As World War II drew to a close, Reverend Moon, who had been jailed as a member of the Korean independence movement while studying at a Japanese university, returned to his native land.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갈 무렵, 존경하는 문은 일본대학에서 공부하는 동안 한국의 독립운동을 하는 독립군으로서 감옥에 갇혔다가 한국으로 돌아왔다.   

 

With the end of Japanese rule, he contacted other Christians and offered to work with them to build God's kingdom on the earth. American Christian missionaries had also heard of this young teacher, and disregarded him as a "country preacher." Korean ministers, jealous of the young man's appeal with their members, rejected him and accused him of espousing false teachings. Because the Christian churches failed to embrace him, Reverend Moon realized that he would have to walk the lonely path of a pioneer. (탁지일의 인용부분)

 

일제통치말엽에 문선명은 다른 기독교인들을 접촉해서 지상에 하나님의 왕국을 세우기 위해 그들과 함께 일을 했다. 미국기독교선교사들은 이러한 젊은 선생의 말을 들었고, 그를 지방설교가로서 무시했다. 그들 회원과 함께 한 한 젊은이의 호소에 시기하는 한국목사들은 문선명을 거절했고 잘못된 교리를 가르친다고 그를 비난했다. 기독교교회들은 문선명을  수용하는데 실패했고, 존경하는 문선명(REVERAND MOON)은 개척자의 외로운 길을 걸어가야 한다고 깨달았다. 

 

Subsequently, he was called by God to travel to the communist north. There, he began to teach publicly, despite the dangers of doing so in a country where religion was not welcome. As a poor preacher who looked at the Bible in a new way, Reverend Moon was more vulnerable than the established churches, and, not surprisingly, was one of the first to come under attack from the local communists.

 

이어서 그는 북한 공산국가를 여행하다가 하나님으로부터 소명을 받았다. 그는 종교가 환영받지 못하는 국가에서 위험을 무릅쓰고 종교에 대해서 가르쳤다. 새로운 방법으로 성경에서 본 초라한 설교자들 처럼 존경하는 문은 교회를 확립하는 것 보다 더 비난받기 쉬웠다. 그리고 존경하는 문은 공산주의자로부터 공격을 받게 되는 첫번 째 사람이 되었다.  

 

Charged with disturbing the social order, in November 1946, the young minister was imprisoned and tortured. The police thought him dead and threw his body into the prison yard. Some of his followers found him and carried him away to tend to his broken body. Miraculously, Reverend Moon survived and regained his strength. Undaunted, he began preaching in public again.

 

1946년 사회적 무질서속에서 젊은 성직자는 감옥에 갇히었고 고분을 당했다. 경찰관은 그를 죽었다고 생각해서 감옥에 던져 버렸다. 그를 따르는 몇람이 그를 발견하고 그의 상처난 육신을 돌보아 주었다. 존경하는 문은 살아났고 새로운 힘을 얻게 되었고, 그는 다시 공적으로 설교하기 시작했다.

 

In April 1948, he was arrested again and sentenced to five years of hard labor in Hungnam prison. He was among the first of Christian ministers sent to the Soviet-style North Korean gulag. Hungnam was an extermination camp where prisoners were deliberately worked to death (prisoners were forced to load heavy bags of corrosive lime, which slowly ate away their skin). Few lasted more than six months. Yet in that miserable concentration camp, Reverend Moon survived for nearly three years. Although he didn't speak a word of the Divine Principle, many of his fellow prisoners came to him for spiritual strength and became his disciples.

 

1948년 4월에 문은 체포되었고 다시 흥남감옥서에서 5년 동안 노역을 하도록 선고받았다.

 

On June 25, 1950, the North Korean army invaded the South in a lightning attempting to univy the entire peninsula by force. UN and American forces, under Gen. Douglas MacArthur, rescued the beleaguered South. One month after the capture of Seoul, UN forces reached the gates of Hungnam prison. In the meantime, the communist prison authorities had begun to execute the prisoners. The prison camp was liberated the morning of Reverend Moon's scheduled execution.

 

Despite his brutal prison camp experience, Reverend Moon did not immediately flee to the South. Instead, he returned to Pyongyang and spent forty days searching for the members of his scattered flock. He eventually found a few members and then traveled south on foot with two of them. In the port city of Pusan, Reverend Moon and one disciple built the first Unification Church from discarded army ration boxes. At that time, he told his small following that one day the message of the Divine Principle would be spread all over the world. He prophesied that people from all over the world would venerate that hillside. Reverend Moon's prophecy sounded unbelievable.(존경하는 문의 예언성은 믿을 수 없는 것이었다) Yet, it came true. Tens of thousands of people, including 7,000 ministers from America, have made a pilgrimage to the spot. How did this come about?

 

The Beginning of the Unification Church

 

On May 1, 1954, in Seoul, Reverend Moon founded the Holy Spirit Association for the Unification of World Christianity (popularly called the Unification Church). (문은 통일교를 세웠다).

 

The church immediately attracted followers from a major Christian women's university, Ewha University, a school closely linked with the Korean government and with the mainline Protestant denominations. Because many students were joining the church, the school sent professors to investigate. When several professors also joined, instead of sincerely welcoming this new church, the school persecuted it. The university president ordered the professors and students either to leave the church or leave the school.

 

Coincidentally, newspapers in Seoul suddenly began too print alarming stories about the Unification Church, about sex orgies and Reverend Moon being a North Korean agent.

 

Reverend Moon was thrown in jail, to be released weeks later when no charges could be found. Again the following years he was thrown in jail on charges of evading the military draft, even though during the time in question he had been in Hungnam prison. After several months confinement -- and sensational media coverage -- the charges were dropped. His release received scant notice in the press. Thus began the pattern of collusion between religious leaders, government and the media to suppress Reverend Moon and his church.

  

이상 탁지일은 재림주로서의 문선명의 한국재림을 논문 맨 앞에 인용했고, 재림주로서 존경하는 문선명이라는 의미에서 Reverend Moon 을 여과없이 인용했고, REVERAND MOON(대문자)의 활자체를 크게 해서 재림주를 홍보했다. 

 

일반 성직자로서의 MOON 이 아니라 예수가 실패한 구원사역을 이행할 재림주로서의 MOON 에 대한 경칭이었다. 그러므로 탁지일은 이러한 인용을 하는데 있어서 조심해야 했고, 재림주로서의 문을 비판해야 했는데 홍보하는데 급급했고, 한 문장도 문선명과 통일교가족에 대해서 비판을 한 적이 없다. 

 


 
기사입력: 2017/06/05 [08:14]  최종편집: ⓒ lawnchurc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