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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세로 가는 예장통합
제도적인 면, 신학적인 면, 철학적인 면, 성명서적인 면을 통해
법과 기독교 (755)

 

 

▲     © 기독공보

 

예장통합교단이 점점 카톨릭화하여 중세로 가고 있다는 지적이 있다. 종교개혁 500주년을 맞이하여 예장통합교단의 정체성이 위기를 맞고 있다.  

 

A. 제도적 중세

 

김동엽목사 총회장시절, 김동엽목사는 천주교와 직제일치에 서명을 하였다가 교단목회자들로부터 행정심판을 당했고, 결국 김동엽총회장이 한발 후퇴를 하고 총회장으로서 교리적 고백을 하는 수모까지 겪는 차원에서 끝냈다.  

 

 

▲     ⓒ 법과 교회

 

 

김동엽목사가 2014년 총회장 시절 천주교와 직제일치의 서명이 화근이 되어 이로 인해 많은 봉변을 당하기도 하였다. 총회장이 중세로 가고 있었다.   

 

B. 신학적 중세

 

에장통합교단산하 영성이나 교회사 교수들이 카톨릭신학에서 학위를 하거나 개신대학교에서도 천주교영성과 신학을 전공하고 와서 천주교영성과 신학을 가르치는 것으로 드러나 통합교단이 점점 중세로가고 있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이미 교수들의 영성신학은 중세카톨릭의 영성이자 신학이었다.

 

 

▲     © 기독공보

   

▲     © 기독공보

 

  

심지어 세월호영성까지 등장하였다.

  

 

 

  

▲     © 법과 기독교

    

▲     © 기독공보

 

 

이처럼 통합교단내의 신학교 교수들의 신학이 중세의 영성으로 가고 있었다.   

 

C. 철학적 중세

 

  a. 실재론을 토대로 한 카톨릭 

 

중세를 지배한 철학적 사조는 실재론이다. "소크라테스는 인간이고 인간은 동물이다"라고 할 경우 소크라테스는 개체이고 인간과 동물은 보편이다. 그러나 실재론에 의하면 "보편은 실재성을 가지고 개별적 사물에 앞서 존재한다"고 주장한다. 보편은 이데아와 유사한 철학적인 개념이다. 경험이 불가능한 개념속에서만 살아 움직이는 것이다. 플라톤은 '이데아'를 주장했지만 카톨릭은 플라톤 이데아의 영향을 받아 이데아적 '보편'을 주장했다.  경험이 불가능한 개념과 상상속에 머무는 실재였다. 그것이 보편으로 표현되었다. 카톨릭은 보편을 뜻한다.  보편을 구성하는 철학적 사조는 실재론이었다. 관념속에서 보편의 개념이 실재하는 것이다.  

 

그러나 실재론에 대립하는 유명론자들은 "보편은 단순한 명사(사고에 의한 추상의 산물)에 불과하고 다만 개별적 사물만이 실재한다(보편은 개별적 사물 뒤에 있다)"라고 하여 실재론과 대립하였다.  중세 천주교는 실재론의 입장을 취했고, 유명론에 의해서 무너졌다. 종교개혁자들은 유명론을 토대로 개체를 중시했고, 이 개념은 모든 개체들이 제사장이라고 주장하는 만인제사장설을 주창하게 했다. 

 

만인제사장설은 카톨릭의 보편이 존재한다는 실재론에 반대하는 개체의 개념이었다. 이상적인 실재의 보편적인 제사장은 교황 한 명에 불과했다. 그러나 현실적인 개체의 제사장은 만인이었다. 루터는 유명론의 영향을 받아 개체를 중시하는 만인제사장설을 채택한 것이다. 개신교는 개체를 선택했지만 천주교는 보편을 선택했다. 보편논쟁은 개체와 보편의 싸움이었다. 종교개혁자들은 보편보다 개체를 선택했다. 

     

천주교가 채택한 실재론에 있어서 실재는 현실에서 사람들이 받아들이는 개개의 사물이 아니라, 사물에 우선하여 존재하는 보편화된 개념이다. 그것이 참다운 실재(實在)라는 것이다. 이것은 플라톤의 이데아설을 계승한 것인데 카톨릭은 객관 세계, 보편과 개체와의 관계를 카톨릭 교회의 교의에 따라 해명하고 이 교의를 옹호하는 것이었다. 

 

카톨릭교회에서 교회개념은 "단지 개개의 신자 내지 개개의 지방교회의 집합체가 아니라 그것을 초월한 가장 보편적ㆍ실재적인 결합체이며, 지상에서 신의 나라의 형상으로서 가장 근원적ㆍ보편적 실재인 신에 가장 가까운 것이다" 이다. 카톨릭의 교회개념은 통합교단의 교회의 개념과는 전혀 다르다.

 

개신교에서 교회는 택함받은 사람들의 집단을 의미하지만 카톨릭에서 교회는 개개의 건물교회에 우선하여 존재하는 이데아적인 것과 유사한 보편적으로 실재하는 개념으로서의 이상적인 교회를 말한다. 이러한 이상적인 교회가 실재하는 보편교회이다. 감각할 수 있는 개체교회가 아니라 만질 수 없고 건축가들이 세울 수 없는 이데아적인 개념에서 보편교회로서의 의미를 갖는다.  

 

중세의 보편논쟁

 

중세에서는 보편논쟁이 있었다. 보편논쟁이라 함은 보편과 개체의 논쟁이었다. 실재론은 보편을 주장하고 유명론은 보편을 반대하여 개체를 주장하였다. 실재론은 우리의 감각세계를 떠나 이데아적인 보편개념이 있다고 말하고 유명론은 실재 아무 것도 없고 단지 이름만 있다고 했다. 카톨릭교회는 이러한 이데아적이고 보편적인 실재론을 받아들여 실재론의 토대하에서 교리체계를 확립하였다. 철학적 교리를 확립한 것이다. 카톨릭의 교리개념은 보편적 교리이다.     

 

카톨릭의 교리는 교회 개개 신자의 경험상의 집합체를 넘어 그 자체로서 존재하는 교회라고 일컫는 보편적인 가치 실체가 있고, 삼위일체 역시 성부 하나님, 성자 하나님, 성령 하나님을 일체로 하는 보편적인 교의로서 채택된 것이고, 원죄나 구제 사상도, 인간은 인류라고 하는 보편적인 교의로서 받아들여질 필요가 있다는 의미에서 채택디었다.  

 

이처럼 카톨릭의 신학이라는 것은 실재론을 바탕으로 한 보편사상이었다. 삼위일체, 원죄, 성만찬, 교회, 교황 모두 보편개념의 산물이었다. 그러므로 중세천주교와 개신교는 철학적 사조가 다르다. 중세천주교는 보편과 실재론이라는 철학을 중시하는 실재론과 보편교회의 교회의 전통을 토대로 하고, 종교개혁 이후 개신교는 경험할 수 있는 개체를 중시하는 유명론과 성서를 토대로 하고 있다.        

 

카톨릭의 교회개념은 이상화된 보편실재개념으로서의 교회

 

그러므로 카톨릭의 교회개념은 이상화된 보편실재개념으로서의 교회이기 때문에 교회의 전통과 해석은 성서이상의 권위를 갖는다. 성만찬 역시 우리가 경험하는 보편의 개념을 갖고 있기 때문에 영혼의 생사여탈권과 관련이 되어 있고, 교황역시 모든 존재하는 사제에 앞서는 보편자로서의 교황이기 때문에 교황의 무오설까지 주장한 것이다. 개념속에서 실재하는 이데아적인 보편 종교사제 이다. 이데아적이기 때문에 무오한 것이다.  

 

중세카톨릭은 개념속에 있는 실재, 즉 보편을 중시하였다. 중세에 있어서 신, 교회, 교황, 성만찬, 삼위일체는 모두 경험하기 어려운 보편화 개념이었다. 이러한 보편화개념을 토대로 하고 있는 교파는 개별자를 중시하는 개신교와 질적인 차이가 있었다. 더군다나 보편을 중시하는 교파는 개체를 무시하고 침해하고 인권을 유린하는 경향이 있다. 

 

보편은 개체를 앞서고 개체는 보편에 종속되는 것이다. 그래서 중세는 보편사제 교황의 사회였고, 개체교회를 뛰어넘는 보편교회의 시대였고, 보편교리의 시대였다. 개신교가 성서를 중심하는 교파라면 카톨릭은 플라톤 철학과 아리스토텔레스 철학을 토대로 하여 교리를 만든 철학적 교파였다. 양측은 질적으로 출발점이 다르다. 종교개혁자들의 출발은 오직 믿음, 오직 성경이었다. 카톨릭의 출발은 실재론적인 철학과 보편교회전승이었다.   

 

그러므로 카톨릭의 교회개념은 보편화라는 뜻을 갖고 있지만 이는 우리가 일반적으로 경험하는 객관적이고 경험하며 퍼져있다는 뜻의 보편이 아니라 지구상의 모든 교회 이너머에 있는 이데아적인 교회로서의 보편교회를 말한다. 카톨릭은 이처럼 교회론을 관념화하였던 것이다. 이것이 실재론이다.  이것은 가톨릭 교회 개개 신자의 경험상의 집합체를 넘어 그 자체로서 존재하는 보편적인 가치 실체이다.  

 

 b. 유명론을 토대로 한 개신교     

 

이러한 보편개념의 실재론에 반대하고 나선 이론이 오늘날 루터가 사상적으로 영향받아 종교개혁을 일으킨 유명론이었다.  유명론은 실재론에 대해 실재하는 것은 없고 개념화된 이름 뿐이라고 반박한다. 경험한 개체만이 실재라고 주장하는 것이다. 사물에 우선하여 존재하는 보편자인 참다운 실재는 없고 단지 이름만 있을 뿐이라는 것이다. 

 

카톨릭교회 측은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을 채용하여 경험적 사물 속에서 보편을 확보하는 시도를 했으며, 토마스 아퀴나스의 보편은 '사물의 안에'(in rebus) 형상으로서 존재한다고 하는 약간 절충적으로 완화된 실재론을 이야기했지만 그러나 13세기 후반 이후, 스콜라 철학 말기가 가까워짐에 따라 신학과 철학을, 신앙과 이성이라는 이질의 영역에 속하는 것으로 보고 각각 별개의 진리 즉 '이중 진리설'을 주장하는 둔스 스코투스(Duns Scotus)가 나와 유명론을 내세우기도 했지만, 14세기에는 윌리암 오컴이 유명론을 역설하여 이것이 곧 근대의 유물론적 경험론으로 발전하였다. 보편은 사물안에도 없고 경험하는 개체만이 있을 따름이라고 하여 실재론의 종지부를 찍었다. 유명론에 입각하여 카톨릭은 허물어져 내렸던 것이다.  

 

결론적으로 볼 때 유명론은 진실로 존재하는 것은 개개의 사물이며 보편이란 단지 '개개 사물의 배후'에 그것들에 공통되는 명사로서 붙여진 일반적인 기호나 이름(라틴어 nomina)에 불과한 것이며 따라서 실재하지 않는 추상물이라고 판단하였다. 실재론과 유명론의 이러한 대립은 상술한 바와 같이  '보편 논쟁'으로 널리 알려져 있는데, 실재론에 대항한 유명론의 대두는 가톨릭 교회의 스콜라 철학의 권위에 도전한 합리적 이성, 즉 경험적 제 과학을 육성한 사조(思潮)의 승리를 예고하면서 스콜라 철학의 붕괴를 촉진하였다. 14세기에 이르자 윌리암 오캄을 중심으로 유명론이 발전됨에 따라 중세 스콜라 철학의 붕괴가 진행됐다. 유명론은 이름 뿐인 실재를 배제하고, 경험과 감각에 입각한 개체를 중시하였다. 

 

총회장의 보편 슬로건

 

현재 예장통합교단은 실재적 존재로서 총회가 노회와 교회를 초월하고 있고 보편적인. 실재적인 결합체라고 판단하고, 심지어 '거룩한 교회에서 다시 세상속으로'라고 하면서 교단을 거룩한 교회로까지 승화시키고 있다. 이것은 '다시 거룩한 교회로'는 천주교의 교황과 신이라는 보편을 중시하는 실재론적인 입장이다. 그런데다가 이러한 슬로건은 현실화시키기 어려운 명목상에 불과하다. 중세의 보편 슬로건에 불과하다.  

 

보편권력을 통한 교리적 마녀사냥

 

이러한 현상은 이미 중세교회에서 실재론의 입장으로 이루어졌던 것이다. 그래서 교단이 개체보다 보편을 중시하기 때문에 중세로 가고 있는 것이다. 중세는 보편의 이름으로 개체의 인권유린과 인권침해, 핍박이 비일비재하게 나타났다. 마녀사냥은 대표적인 예이다.

 

교회라는 보편권력에 의해 힘없는 개체들이 희생을 당했다. 교단은 교인과 교회라는 개체보다 보편자인 교단을 중시할 때 실재론의 입장을 취하는 것이 된다. 실재론적인 입장을 취하면 보편교단의 이름을 중시하고 개교회목사나 교인, 개교회는 무시당하게 되는 것이다.

 

군소교단사람들의 교리적 마녀사냥 역시 마찬가지이다. 한국에서 예장통합교단은 보편교단이라는 인식을 갖고 있기 때문에 은사나 신비적인 경험이 많은 군소교단의 개체목사들은 보편교단앞에 이단이라는 마녀사냥을 당했던 것이다. 합동교단 역시 마찬가지이다. 자신들이 보편교단이라 판단하고 군소교단의 개체들을 이단으로 마녀사냥하고 있다.  이는 통합이나 합동교단이 중세로 가는 것이다.     

 

통합 교단이 보편교단으로 생각할 때 교인 개인과 개체교회의 입장을 무시하거나 침해할 때 중세의 실재론적인 철학을 선택하는 것이다. 단지 개개의 신자 내지 개개의 지방교회의 집합체가 아니라 그것을 초월한 가장 보편적ㆍ실재적인 결합체로서 교단이 있다고 판단하여 권위를 갖고 노회나 교회, 군소교단의 개체목사들을 무시하는 것이다. 그것은 재판을 통한 권징이나 이대위를 통한 교리적 마녀사냥을 통해 나타난 것이다. 한교연도 자신들이 보편연합교단이라고 판단하기 때문에 함부로 이단사냥을 하는 것이다. 보편을 중시하는 사고는 중세적 사고이다. 예수는 99마리의 보편적인 양보다 잃어버린 한마리 개체의 양을 중시했다.    

 

이처럼 교단의 보편 권위앞에 개체목사들은 이단, 이단옹호, 면직 출교당하는데 속수무책이다. 개체를 무시하는 것은 중세의 실재론적인 철학에 근거하는 것이다. 대형교단이 군소교단을 무시하고, 교단의 재판국이 개체를 무시하는 등하여 보편교단의 이름으로 교단의 일방적인 권위를 마음대로 휘둘러 개체가 피해를 당하는 것은 중세의 실재론적인 철학인 '보편사상'에 의거하는 것이다. 실재론적인 철학은 보편개념을 중시하고 보편개념은 개체를 무시한다. 최근에도 예장통합 재판국에 의해 두 목사가 면직을 당했다. 죄몫도 마녀사냥식 죄몫이었다. 대부분 괘씸죄이다. 이러한 보편의 개념은 비단 재판국에서만 나타나는 것이 아니다.

 

 D. 성명서적 중세

 

교수들의 보편 성명서

 

교수들은 이미 중세신학으로 화하고 있다. 교수들의 성명서 신학 역시 마찬가지이다. 교수들은 사건만 있으면 책임지지않는 페이퍼 성명서만 발표하고  자신들은 지키지도 않고 준행하지도 않고 참여하지도 않는다. 그야말로 이름뿐인 성명서이다. 실제 책임이나 내용이 없이 형식만 중시하는 교수들의 이름뿐인 성명서는 중세 보편개념의 산물이다. 상상속에, 이상속에, 초현실속에, 이데아 속에만 머무는 것이다. 책임질 일 도 없고 지킬 일도 없고, 교수라는 존재감을 드러내는 것 이외에 아무 것도 아니다. 명목에 불과한 교수들의 성명서는 개개의 교수들을 넘어 보편적인 교수들의 외침이라는 실재론적인  보편 성명서의 성격을 지니고 있었다. 다음과 같은 성명서는 삼척동자도 다 아는 내용이다. 책임지지 않는 다른 성명서와 다를 바가 없는 형이상학적인 이름뿐인 중세의 성명서였다.   

 

▲     ©법과 기독교

 

   

루터의 개체 성명서

 

그러나 500년전 루터는 보편에 도전하는 95개조 반박문이라는 개체성명서를 발표하였다. 이 성명서는 책임을 지고 죽음을 각오하는 그야말로 지옥의 성명서였다. 그러나 교수들의 존재감만들을 드러내는 책임지지 않는 성명서는 이름뿐인 중세의  보편성명서에 불과했다. 책임을 회피하는 형이상학적인 paper성명서에 불과했다.      

 

보편성명서는 명목상 성명서에 불과한 형이상학적 성격을 띠기 때문에 책임질 사람이 있는 개인이 아니라 책임질 일 없는 보편 교수전체의 성격을 띠는 실재론적 성명서였다. 형이상학 속에만 머무는 성명서이다. 내용은 정의와 평화, 생태 영성이다. 대부분 형이상학적이고 사변적이며 추상적인 보편성명서에 불과하다. 이름뿐인 성명서라는 것은 신학성명서를 통해서 알 수 있다. 루터의 성명서는 루터 개인만이 서명한 개체성명서였다. 그러나 그 개체의 성명서는 명목과 형이상학에 머문 보편 실재의 중세 카톨릭의 문을 허물수 있었다. 불행하게도 교수들은 자신들이 쓴 성명서하나 준수하지를 못했다.     

 

교수들은 1985년 보편 신학성명서를 발표했다. 1985년 장신 신학 성명서 제 3명제를 보자. "비록 신학적인 주장들이 다르며 신조나 신앙고백에 있어서 완전히 일치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우리는 복음과 구원에 촛점에 두는 기독교의 본질을 공통인수로 할 때 동일한 우리안에 있는 하나님의 양들이다"고 선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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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장신대 허호익교수가 주도가 된 교수들의 2016년 교수들의 성명서는 조금 교리가 다르거나 비본질적인 것만 달라도 이단으로 정죄하는데 앞장섰던 것이다. 교수들의 성명서는 일관성이 없었다. 명목상의 성명서이기 때문이다. 성서의 정신은 참회하는 자에게 용서를 하라고 했는데 교수들은 참회하고 용서를 요구해도 서면해서는 안된다는 보편성명서를 채택하였다.       

 

▲     © 법과 기독교

 

 

 

교단, 보편적 권위를 갖고 개체교회와 개인의 양심의 자유 무시

 

따라서 종교개혁 500주년 이 된 마당에 통합교단은 여전히 중세에서 완전히 출애굽하지 못했고, 다시 중세로 가고 있다. 제도적인 면, 신학적인 면, 철학적인 면, 성명서적인 면, 총회장의 슬로건을 보았을 때, 통합교단은 보편교단의 입장을 중시하고, 보편교단의 권위를 갖고 명목을 중시하고, 무책임성을 중시하는 중세로 가고 있다.  

 

보편교단이 개체교회의 자유나 개인의 신앙 양심의 자유를 무시하고, 통합교단의 총수가 카톨릭과 제도적인 일치를 하고, 신학교수들의 신학과 성명서가 중세로 회귀하고, 총회장들의 슬로건(101회 '다시 거룩한 교회로', 102회 '거룩한 교회에서 다시 세상속으로') 도 하늘의 형이상학속에서 맴도는 이데아적 슬로건에 불과한 것을 볼 때, 통합교단은 제도적인 면, 신학적인 면, 성명서적인 면, 철학적인 면, 총회장의 슬로건에 있어서 중세로 가고 있는 것이 확실하다

 

보편교단에서의 탈출은 1) 천주교와의 제도적 일치를 반대하고, 2) 개교회의 자유와 개개인의 인권을 중시하고, 3) 종교개혁 신학과 영성으로 회귀하고, 4) 실재론인 보편을 포기하고 개체를 중시하는 유명론적인 철학을 토대로 하고, 5) 교수들의 이름 뿐인 책임지지도 않는 보편성명서 발표하는 것을 자제하고 1명이라도 죽음을 각오한 개체 성명서가 필요하고, 6) 총회장은 현실화하기 어려운 명목뿐인 보편슬로건을 자제해야 할 것이다. 그래야만 다시 중세로 회귀하지 않는 길이기 때문이다.  

 

교단은 더이상 보편권위를 갖고 개체의 인권이나 개체교회의 자유를 침해하지 말고, 직영신학대 교수들은 카톨릭영성과 신학을 가르치는 것을 중지하고, 철학적인 입장에서 경험하기 어려운 형이상학적 보편(실재론)을 포기하고 루터가 영향받은 살아있는 개체를 중시하는 유명론적 입장을 선택하고, 교수들은 책임지지 않는 교수전체의 보편으로 하지말고 한 명이라도 루터처럼 죽음을 각오하는 개체성명서를 발표하고, 총회장은 하늘의 뜬구름같은 중세의 형이상학적인 보편구호를 내세우지 말고, 1년안에 하나라도 실천가능하고 피부로 느끼면서 경험할 수 있는 할 수 있는 유명론적인 개체구호를 내세워야 할 것이다.  "거룩한 교회, 다시 세상속으로"는 보편 슬로건에 불과하다. 형이상학적인 구호를 내세우지 말고 경험가능한 구호를 내세워야 할 것이다.           

 

 

 

 

 


 
기사입력: 2017/07/25 [23:06]  최종편집: ⓒ lawnchurc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