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로 보내기 글자 크게 글자 작게
다윗의 환궁
사무엘하 19장 1절 ~ 33절
유장춘 (331)

 

▲ 유장춘 목사     © 법과 기독교


○ 하나님께서는 사람에게 복을 주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축복하시는 분이 아니고, 권리가 있는자의 축복과 당사자의 행동을 근거로 복을 주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께서 『(창세기12:1-2)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네게 보여 줄 땅으로 가라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하게 하리니 너는 복이 될지라.』고 말씀하신 하나님은 지금도 사람을 복덩이로 만드십니다.

 

가나안 땅이 광야에 비하여 비옥할지라도 하나님께서 복주지 않으시면 이방 족속들이 습격하여 빼앗길 수도 있고, 수고한 열매를 먹을 수 없기도 합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주신 복을 우리에게도 주셨습니다. 『(갈라디아서3:8-9)또 하나님이 이방을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로 정하실 것을 성경이 미리 알고 먼저 아브라함에게 복음을 전하되 모든 이방인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받으리라』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영적인 복뿐만 아니라 전인적인 복을 누리시기를 축복합니다.

 

사람이 복을 누리는 것은 아무리 애쓰고 노력해도 그것만으로는 부족하고, 하나님께서 복을 주셔야 합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주시는 복도 사람이 합당한 노력을 해야 합니다. 아브라함도 하나님께서 복을 주셨지만, 아브라함도 순종하여 믿음의 조상과 복의 근원이 되었습니다.

 

야곱도 복을 받기 위해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을 다 함으로 부작용도 있었지만 복을 받았습니다. 슬로브핫의 딸들은 남자에게만 주는 땅의 상속을 노력을 다함으로 받았습니다. 다윗왕이 반란을 진압하고 환궁하면서 만나는 여러 사람들의 모습에서 구원받은 사람으로서 어떻게 살아야 하나님의 복을 받을 수 있는지에 대하여 하나님의 음성을 들으시기 바랍니다.

 

 

 

본문말씀

 

 

 

다윗왕은 아들 압살롬이 죽었다는 말을 듣고 "내 자식 압살롬아, 내 자식 압살롬아, 내 자식아!" 하며 계속 울기만 하였습니다. 왕이 슬퍼하고 있다는 소식을 들은 군인들은 개선행진을 하기는커녕 패잔병처럼 들어왔습니다.

 

그 때 요압이 왕의 거처로 들어가서 "오늘 저희는 임금님과 임금님의 아들, 딸, 왕비, 후궁들의 목숨을 건져드렸는데, 임금님께서는 도리어 저희 모든 신하들을 얼굴도 들지 못하게 하셨습니다. 어찌하여 임금님을 미워하는 자들은 사랑하시고, 임금님을 사랑하는 사람들은 미워하십니까? 이제 보니 이 장병들이나 신하들은 임금님께 아무것도 아니었습니다. 우리가 모두 죽고 압살롬이 살았더라면 임금님은 오히려 그것을 좋아하셨으리라는 것을 이제야 알았습니다. 이러지 마시고 일어나 나가셔서 신하들에게 따뜻한 말 한마디라도 해주십시오.” 라고 말했습니다. 요압은 다윗에게 무섭게 경고를 하기를 “임금님께서 나가주지 않으신다면, 두고 보십시오. 오늘 밤 임금님 곁에 머물러 있을 사람이 하나도 없을 것입니다.

 

그리 되면 임금님께서는 어렸을 때부터 지금까지 당하신 어떤 불행보다도 더한 불행을 당하시게 될 것입니다." 라고 말했습니다.

 

다윗은 요압의 말을 듣고 행동을 바꿔 성문으로 나가 앉자 백성들이 왕 앞에 모여 들었습니다.

 

이 사건으로 다윗왕은 군대장관을 교체해야 하겠다는 생각을 갖게 되었습니다. 요압은 필요한 충언은 하면서도 자신의 정치적 계산을 하였습니다. 그것이 다윗을 불편하게 한 것입니다.

 

 

 

완전한 헌신자

 

 

 

다윗왕은 마하나임에서 받은 바르실래의 도움을 감사하는 마음으로 예루살렘에 함께 가서 공직에 올라달라고 요청을 하였습니다. 그러나 바르실래는 자기는 이미 늙어서 좋은 것과 나쁜 것을 가리지도 못하고, 음식의 맛도 즐길 줄 모르고, 귀가 어두워 아름다운 음악을 들어도 알아듣지 못하는 노인이기 때문에 왕에게 짐만 되고 싶지 않다면서, 고향에서 생을 마감하고 싶다고 완곡하게 제안을 거절하였습니다.

 

섭섭해 하는 다윗에게 아들 김함을 소개하면서 자기를 대신하여 아들이 왕을 섬기게 해 달라고 하였습니다.

 

어떻게 보면 인사 청탁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반란으로 다윗의 지도력이 상실된 상황이기 때문에 측근들의 경쟁이 치열해신 상황에서 특정지역의 맹주인 바르실래가 아들을 보낸다는 것은 끝까지 왕을 돕겠다는 의미입니다.

 

다윗은 기꺼이 그 제안을 받아들여 김함을 중용하였고, 김함은 끝까지 충성하였습니다. 그래서 다윗은 임종을 하면서 솔로몬에게 바르실래의 아들들에게는 자비를 베풀어서, 늘 가까이 두라고 유언하였습니다.(왕상2:7)

 

여러분! 여러분의 부모와 자식관계가 아버지 바르실래와 아들 김함의 관계처럼 끝까지 아름답게 지속되기를 축복합니다.

 

 

 

억울하지만

 

 

 

다윗이 예루살렘성으로 돌아오는 길에 므비보셋이 영접하러 나갔습니다. 그는 다윗왕이 피난한 이후 돌아오는 날까지 발도 씻지 않았고 수염도 다듬지 않았으며 옷도 빨아 입지 않으면서 슬퍼하였습니다.

 

다윗왕이 "므비보셋 너는 왜 나와 같이 가지 않았느냐?"고 책망하며 말하자, "임금님, 제 종 녀석이 소인을 속였습니다. 소인은 임금님과 같이 가려고 종더러 나귀에 안장을 얹으라고까지 일렀었습니다. 소인은 절름발이가 아닙니까?

 

그랬는데 그 종이 임금님께 소인을 모함하였습니다. 그러나 임금님께서는 정말 하늘이 내신 분이시니 처분만 기다리겠습니다.

 

저희 집안은 모두 임금님 앞에서 죽어 마땅한 몸인데도 임금님께서는 소인을 임금님과 한 식탁에서 먹게 해주지 않으셨습니까? 그러니 무슨 낯으로 임금님께 살려달라고 다시 호소하겠습니까?"

 

다윗왕은 므비보셋의 말을 들었을 때 자신이 시바의 일방적인 말을 듣고 재산을 시바에게 준 것을 깨달으면서도 그대가 차지한 땅을 시바와 나누어가지도록 하오." 라고 말할뿐 모함한 시바를 벌하지 않았습니다. 므비보셋은, "임금님께서 이렇게 무사히 돌아오셨으니 저는 괜찮습니다. 다 시바에게 주십시오." 라고 하면서 사양하였습니다.

 

시바는 다윗왕이 어려울 때 이처럼 일정한 후원을 하여 환심을 산 뒤 므비보셋을 모함하여 재산을 얻었음에도 열다섯 아들과 부하 이십 명을 이끌고 요르단 강으로 달려왔습니다. 다윗은 사실관계를 확인하지 않았습니다. 여러분! 저는 므비보셋을 묵상하면서 가슴이 아팠습니다. 억울하면서도 받은 은혜를 끝까지 지키는 므비보셋같은 사람을 하나님께서 복주시기를 바랍니다.

 

 

 

살아남기 위해서 몸부림치는

 

 

 

다윗왕이 피난갈 때 저주한 시므이가 왕을 맞으러 허둥지둥 베냐민 사람 천 명을 거느리고 나왔습니다.

 

시므이는 다윗왕 앞에 엎드려 "임금님, 소인에게 죄를 주지 말아주십시오. 임금님께서 예루살렘을 떠나시던 날, 이 소인이 저지른 잘못을 마음에 두지 마시고 잊어주십시오.

 

소인이 어떤 잘못을 저질렀는지 스스로 잘 알기에, 이 날 요셉 가문 가운데서 누구보다도 먼저 이렇게 임금님을 맞으러 나왔습니다." 라고 사죄를 청했습니다. 아비새는 살려둘 수 없다고 하였지만 다윗은 “나는 이제야 비로소 이스라엘의 왕이 된 것 같소. 이런 날 이스라엘 사람을 하나인들 죽여서야 되겠소?" 라고 말하고 시므이에게 결코 죽이지 않겠다는 다짐을 주었습니다.

 

 

 

교 훈

 

 

 

요압은 충성하면서도 자기 정치적인 이익을 계산하고 충성하였습니다. 바르실래는 끝까지 충성하였습니다. 므비보셋은 억울해도 받은 은혜에 감사했습니다. 시바는 시기적절한 때 헌신하여 환심을 산 뒤 모함하여 재산을 얻었습니다. 시므이는 저주를 한 뒤 처벌을 받을 상황으로 바뀌자 사죄하였습니다. 구원받은 여러분! 어떻게 살겠습니까?

 

누구처럼 살라고, 누구처럼 살지 말라고 설교의 결론을 맺는 것 보다는 하나님의 복을 받은 아셀을 소개하겠습니다.

 

『(창49:20)아셀에게서 나는 식물은 기름진 것이라 그가 왕의 진수를 공궤하리로다』 는 축복을 받았습니다.

 

세월이 지난 후 아셀은 『(신명기33:24-25)아셀에 대하여는 일렀으되 아셀은 다자한 복을 받으며 그 형제에게 기쁨이 되며 그 발이 기름에 잠길지로다 네 문빗장은 철과 놋이 될 것이니 네 사는 날을 따라서 능력이 있으리로다』는 축복을 받았습니다.

 

아버지 야곱과 모세의 축복은 아셀지파가 차지한 땅에 감람나무가 즐비하게 있어서 감람유가 흐르는 땅에서 살게 됨으로 이루어졌습니다.

 

제비뽑기로 차지할 땅을 결정했지만, 하나님께서 제비뽑기 까지도 결정하신 것입니다. 또한 아셀 지파의 밭의 기름짐은 성령의 인도함을 받는 영적인 복을 받았습니다. 네 문 빗장은 철과 놋이 될 것이다라는 승리의 복을 받았습니다. 시기 적절한 복을 받았습니다. 이러한 복이 여러분에게 임하시기를 축복합니다.

 

왜 이런 복을 받았는지에 대해서는 아셀지파가 그 형제에게 기쁨을 주므로, 기쁨이 다시 돌아와서 복을 받고, 다시 기쁨이 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 12지파를 제사장의 에봇으로 표시할 때의 아셀지파의 보석은 호마노였습니다. 호마노는 [영원토록 빚나는, 영화롭게 하다]는 뜻입니다.

 

정리하면 형제에게 기쁨이 되는 삶을 변함없이 살므로 축복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순종하며 노력을 다할 때 믿음의 조상, 복의 근원이 되었습니다. 야곱은 복을 받기 위해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을 다함으로 부작용도 있었지만 복을 받았습니다. 우리도 하나님의 복을 받기 위해서 사람에게 기쁨을 주는 삶을 삽시다. 인간적인 노력과 권리를 가진자의 축복을 보시고 하나님께서 복을 주신다는 것을 깨달으시기 바랍니다.

 

 

 

분당소재 새소망교회 담임목사 유장춘 (www.yebae.com)

 


 
기사입력: 2017/09/22 [12:54]  최종편집: ⓒ lawnchurc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