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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교회의 이단정죄는 제국주의적 이단정죄
반보편주의에서 보편적 보편주의로 가야
법과 기독교 (1322)
▲     © 법과 기독교

 

 

역사적으로 볼 때 제국주의는 나름대로 명분이 있었고, 한국의 이단정죄도 명분이 있었다. 제국주의의 약소국 침략 명분은 문명의 빛과 자유의 확산이었다. 한국교단의 이단정죄 명분은 교단 신도들의 신앙보호 이다. 그러나 이러한 명분하에 약소국이나 군소교단들은 중심국가와 중심교단으로부터 침략이나 영적 침해를 당하게 된다. 이러한 것은 보편주의를 가장한 반보편주의 이다. 제국주의의 반보편주의와 한국교단의 반보편주의를 보자. 한국교단의 이단정죄는 제국주의적인 것과 다를 바 없다.     

 

제국주의의 반보편주의

 

 『근대세계체제』『역사적 자본주의/자본주의 문명』 등으로 널리 알려진 세계적 석학 이매뉴얼 월러스틴(I. Wallerstein)은 19세기와 20세기초 제국주의시대에 제국 팽창의 명분은 '문명의 빛'을 세상에 비춘다는 계몽주의의 확산이었다고 주장했다 . 아프리카나 아시아식민제국주의는 문명의 빛을 세상에 비춘다는 명분으로 그들의 제국주의적인 야욕을 추구해 나갔다. 일본 역시 자신들의 나라처럼 한국도 근대화해야 한다는 명분으로 한국의 식민지를 정당화 했다.  2003년 이라크 전쟁을 일으킨 영국과 미국의 명분은 '자유의 확산'이었다고 말한다. 자유의 확산이라는 명분을 걸고 남의 나라를 무자비하게 침공했다. 뒤에는 원유를 차지하고자 하는 야욕이 있었다.  

 

역사가 월러스타인은 이것이 서구의 보편주의라고 주장했고, 이러한 보편주의는  16세기 이후로 근대세계체제의 역사 내내 강자들의 기본적인 레토릭을 구성해왔으며 결국 보편주의가 아니라 반보편주의로 나아가고 있다고 주장했다. 유럽의 보편주의는 문명의 빛을 세상에 비춘다는 명분과 자유의 확신을 명분으로  결국 현실세계에서 타자에 대한 무자비한 폭력과 착취로 이어질 수밖에 없었다. 문명의 빛과 자유의 확신이면에 폭력과 착취, 정복이 있었던 것이다. 결국 이러한 유럽의 보편주의는 진정한 보편주의가 아니라 반보편주의라는 것이다.

 

한국교단의 반보편주의

 

그래서 월러스타인은 무늬만 보편주의가 아니라 진정한 보편주의인 보편적 보편주의를 추구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반보편주의는 국제사회에서 강대국이 약소국에 대한 개입을 정당화하고 있다. 불행하게도 이러한 반보편주의가 한국교계에서 발생하고 있다. 주류교단들이 약소교단들에 대해서 교리적 폭력과 압박으로 인해 약소교단이나 군소교단들이 교리의 식민지적 피해를 당하고 있다. 주류교단은 자신들의 신도들을 보호한다는 명분하에 주류교단의 야욕을 추구해 나가는 것이다. 대형교단의 이단에 대한 정죄는 1980년 대 이후 주류교단들의 기본적인 레토릭이었고, 교단의 헌법편에 나온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과 상관없이 교단이대위의 결정이면 언론이나, 군소교단 목사들은 송두리째 이단으로 정죄된다. 이는 주류교단의 정신적 영적 폭력이다. 결국 군소교단을 없애고 주류교단화 하는 것이다.

 

대형교단이 보편주의 신학을 추구한다는 명분하에 군소교단의 목사들의 신앙고백이나 소명기회도 주지 않고 일방적으로 이단으로 정죄하는 것은 보편주의 신학의 확산이 아니라 반보편주의 정치력의 확산이다. 대형교단은 이단정죄에 있어서 반보편주의를 추구할 것이 아니라 군소교단이나 대형교단 등 누구나가 보편적으로 인식가능할 수 있는 보편적 보편주의를 추구해야 한다. 반보편주의 이단정죄로 나아가면 정치적으로 가거나 강자위주적인 반보편주의로 나아가게 된다.

 

이단감별사들간의 싸움

 

심지어는 강자측에 섰던 이단감별사들끼리 싸우게 되는 결과가 나타나게 된다. 이는 이단정죄가 상식적이거나 보편적이 아니라 정치적이거나 반보편적이기 때문이다.  반보편적 이단정죄는 교리적 폭거와 영적 압박으로 인해 반성서적 반개혁적 반신앙적으로 가게 되는 정치적 이단정죄로 전락하게 된다. 이러한 이단정죄는 대부분 소명할 기회를 주지 않고 본질적인 기준이 아니라 비본질적인 기준으로 이단정죄하는 것이 다반사이다. 이는  교리적 중심에 서 있는 교단이 교리적 주변에 서 있는 사람들을 종속하고 압박하는 도구에 불과하다.

 

그런데다가  이단이면 이단, 아니면 정통이어야 하는데 '교류금지', '집회금지', '예의주시', '이단옹호'라는 말을 교묘하게 사용하여 중심교단의 이단정죄를 정당시 한다. 한국은 탁명환의 1970년대 이후 대형교단의 이대위만 결정하면 교단헌법의 기준이나 소명기회 없이 이단만들기 작업이 지금까지 행해져 온 것이다. 광주사태시 독재 정부는 좌파라는 누명을 쒸워 간첩을 인위적으로 만들었고 한국의 대형교단은 이단이라는 누명을 씌워 이단을 인위적으로 만들었다. 이러한 행위는 반보편주의 이다.    

 

한국교단, 타자에 대한 무자비한 교리적 폭력, 보편적 보편주의로 가야 

 

한국교단의 교리적 보편주의는 복음의  빛을 세상에 비춘다는 명분과 자교단 신도들의 보호라는 명분으로 결국 현실세계에서 타자에 대한 무자비한 교리적 폭력과 영적 정신적 압박으로 이어질 수 밖에 없었다. 앞으로 한국의 이단정죄는 주주류교단과 군소교단이 모두 인식가능한 보편적 보편주의 이단정죄로 가야한다. 

 

더는 정치적, 반보편주의, 비지성적, 반법리주의, 비신앙고백적, 비본질적인 기준에  의한 이단정죄가 있어서는 안될 것이다. 심지어, 요가, 마술, 동성애 성서해석까지 이단으로 정죄하는 것은 교리적 폭거에 의한 반보편적인 이단정죄 이다.       

  

 

 


 
기사입력: 2017/09/27 [18:36]  최종편집: ⓒ lawnchurc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