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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판을 돌이키시는 하나님
사무엘하 24장 1절 ~ 10절
유장춘 (329)

 

▲ 유장춘 목사     ©법과 기독교

○ 하나님은 변함없이 신실하십니다. 계절은 변하지만 하나님은 변함이 없으십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살아계시기 때문에 취소도 하시고 연기도 하시고 변경도 하십니다. 신앙생활을 잘하기 위해서는 이 상반되는 두 개념을 잘 이해해야 합니다.

 

○ 설교이해를 돕기 위해서 한 사례로 유언제도에 대해서 말씀드리겠습니다. 우리나라 민법은 제1065조에서 유언의 방식으로 자필증서, 녹음, 공정증서, 비밀증서, 구수증서의 5종류를 인정하고 있습니다.

 

유언장은 꼭 자필로 작성하거나 녹음하는 방식을 취해야만 합니다. 그 중에 자필증서 유언만 설명드리면 워드로 작성하고 서명 또는 도장을 찍은 것은 인정하지 않습니다. 유언자가 '전문(내용)', '날짜(연월일)', '주소', '성명'을 자필로 작성하고 날인(도장)해야 합니다. 혹시, 내용을 변경하거나 삭제할 때에는 이 또한 '성명'을 기재하고 날인해야 합니다. (제1066조)

 

유언장을 작성한 후에라도 살아있는 동안에 변경할 수는 있지만, 운명한 이후는 변경할 수 없습니다. 이유는 죽은 고인은 의사표시를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살아계시기 때문에 계획하시고, 작정하신 일을 집행하시지만, 살아계시기 때문에 뜻을 돌이키실 수도 있고, 취소, 변경, 연기하실수도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요나선지자에게 “너는 일어나 저 큰 성읍 니느웨로 가서 그것을 쳐서 외치라 그 악독이 내 앞에 상달하였음이니라”

 

니느웨는 지금의 이라크 지역에 있던 앗수르 제국의 마지막 수도였습니다. 이 나라는 이스라엘과 적대관계에 있던 강대국이었고, 결국은 북왕국 이스라엘을 침략하여 여성을 포로로 잡아가서 혼혈로 만들 만큼 악하게 행동하였습니다.

 

요나는 회피했지만 결국 “사십일이 지나면 니느웨가 무너지리라”고 선포하였습니다. 니느웨사람들이 회개하자 하나님께서는 심판을 돌이키셨습니다. 본문을 통해서 우리에게 임박한 심판을 어떻게 돌이킬 수 있는지에 대해서 하나님의 음성을 들으시기 바랍니다.

 

 

 

본문말씀

 

 

 

다윗왕은 전쟁에 나갈 수 있는 인구수를 조사한 후에 자책하며 하나님께 큰 죄를 범하였다고 인정하고 죄를 사하여 달라고 기도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선지자 갓에게 『가서 다윗에게 말하기를 여호와의 말씀에 내가 네게 세 가지를 보이노니 너는 그 중에서 하나를 택하라 내가 그것을 네게 행하리라 하셨다 하라』 고 지시하였습니다. 갓은 다윗왕에게 왕의 땅에 칠 년 기근, 왕이 왕의 대적에게 쫓겨 석 달을 그 앞에서 도망, 왕의 땅에 삼 일 동안 온역중에서 선택하라고 하였습니다.

 

다윗이 갓에게 고통스러움을 호소하고 과거에 사울과 압살롬에게 쫓기었듯이, 또다시 그 고난은 당하기는 싫기 때문에 자비로운 하나님께 맡기고 싶다고 하면서, 삼 일 동안 온역을 선택하였습니다. 약속하신 대로 『(삼하24:15)이에 여호와께서 그 아침부터 정하신 때까지 온역을 이스라엘에게 내리시니 단부터 브엘세바까지 백성의 죽은 자가 칠만 』명이 되는 심판을 하셨습니다.

 

재앙을 진행하는 천사가 예루살렘을 향하여 그 손을 들어 멸하려 할 때 하나님께서 재앙 내림을 뉘우치시고, 하나님께서 백성을 멸하는 천사에게 이르시되 족하다 이제는 네 손을 거두라고 지시하셨습니다.

 

 

 

망한 사례

 

 

 

하나님께서는 사랑이 많으십니다. 그래서 심판을 하시기 전 경고해서 돌이키시기를 원하십니다. 니느웨는 요나의 메시지를 듣고 회개하여 심판을 면하였지만, 유다는 경고를 무시하여 결국 심판을 받았습니다.

 

하나님은 예레미야를 통해서 40년간 유다 왕국의 멸망을 사전 경고 하셨습니다. 사랑하는 동족에게 심판을 선언하는 예례미야는 피눈물을 흘리면서 선포했습니다. 1차 포로로 잡혀가는 고통을 당하면서도 끝내 돌이키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너희가 뉘우치면 내 마음을 바꾸어 그 나라를 멸망시키지 않겠다” 고 하셨지만 끝까지 돌이키지 않았습니다.

 

결국 하나님께서는 예레미야에게 ‘내가 심판을 내리기로 작정했으니, 너는 유다 백성을 위해서 기도하지 말라!’ 고 하신 뒤 나라를 망하게 하셨습니다.

 

이사야 29장에서는 남조유다가 망한 이유를 영적인 소경으로 영이 죽었고, 예배를 드리면서도 형식적으로 드렸기 때문이라고 지적하였습니다.

 

북조 이스라엘의 패망의 이유는 『(열왕기하17:22)이스라엘 자손이 여로보암의 행한 모든 죄를 따라 행하여 떠나지 아니하』였기 때문이라는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을 떠나서 우상을 숭배한 죄였음을 알 수 있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은 살아계십니다. 그래서 심판을 작정하셔서 집행하기도 하시지만, 돌이키시기도 합니다.

 

다윗이 심판을 끝낸 사건을 통해서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할 것인지에 대해서 하나님의 음성을 들으시기 바랍니다.

 

 

 

교 훈

 

 

 

전염병으로 칠만 명을 죽인 천사가 여부스 사람 아라우나의 타작 마당 곁에 있었습니다. 다윗왕이 백성을 치는 천사를 보고 하나님께 나는 범죄하였고 악을 행하였삽거니와 이 양무리는 잘못이 없사오니 주의 손으로 나와 내 아비의 집을 치소서 라고 기도하였습니다.

 

이 날에 선지가 갓이 다윗에게 “여부스 사람 아라우나의 타작마당에서 여호와를 위하여 단을 쌓으소서” 라고 하자 다윗왕 일행이 아라우나의 타작마당으로 향하여 가까이 갔을때 아라우나가 왕과 그 신복들이 자기를 향하여 오고 있는 것을 발견하고는 왕의 앞에서 얼굴을 땅에 대고 절하며 “어찌하여 내 주 왕께서 종에게 임하시나이까” 라고 아뢰자, 다윗이 가로되 “네게서 타작마당을 사서 여호와께 단을 쌓아 백성에게 내리는 재앙을 그치게 하려 함이로라” 고 대답하였습니다.

 

아라우나가 “원컨대 내 주 왕은 좋게 여기시는 대로 취하여 드리소서 번제에 대하여는 소가 있고 땔 나무에 대하여는 마당질하는 제구와 소의 멍에가 있나이다. 왕이여 아라우나가 이것을 다 왕께 드리나이다 하고 또 왕께 고하되 왕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왕을 기쁘게 받으시기를 원하나이다” 라고 하였습니다.

 

다윗왕은 아라우나에게 이르되 『그렇지 아니하다 내가 값을 주고 네게서 사리라 값 없이는 내 하나님 여호와께 번제를 드리지 아니하리라』 하고 은 오십 세겔로 타작마당과 소를 사고 그곳에서 여호와를 위하여 단을 쌓고 번제와 화목제를 드렸습니다. 『이에 여호와께서 그 땅을 위하여 기도를 들으시매 이스라엘에게 내리는 재앙이 그쳤더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정리하면 재앙이 끝난 것은 하나님께서 더 이상 진행하지 않기로 하셨고, 다윗이 회개하고, 값을 지불하고 번제와 화목제를 드렸기 때문입니다.

 

 

 

받아야 할 메시지

 

 

 

저는 어려서부터 신앙생활을 하면서 교인들이 즐거운 일이나 어려운 일이 있을 때 목사님을 초청하여 심방예배를 받는 것을 보았습니다. 목회를 하면서 이사나 질병중에 심방을 요청하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그런데 저는 그 가치를 본문을 묵상하다가 더 알게 되었습니다.

 

여러분! 비신자분들이 삼재라는 말을 많이 사용합니다. 저는 이 말이 어려운 일이 연속된다는 것으로 이해하고 있습니다. 어려운 일 당할 때 더 이상 내려갈 곳이 없다고 생각하지만 틀린 생각입니다. 어려운 일은 연달아서 더 크게 일어날 수도 있습니다. 어려운 일이 있을 때 그곳에서 예배드리시기 바랍니다. 교회와 가정과 국가의 어려움이 끝나도록 우리모두 회개합시다. 다윗의 제사는 번제와 화목제를 드리기 위해서 값을 지불했습니다.

 

우리의 제사를 위해서 예수님께서는 자신을 제물로 드렸습니다. 목회를 하면 할수록 알게 되는 것은 값없이 받았기 때문에, 우리자신은 아무런 희생을 하지 않고, 희생없는 예배만 반복하여 드린다면 결국 값없이 받은 은혜를 깨닫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자신과 교회와 가정, 한국교회와 우리민족을 향한 심판의 소리가 들리십니까? 심판의 징조가 보이십니까? 그것을 끝내시기 원하신다면 값을 지불하는 예배를 드리시기 바랍니다.

 

 

 

분당소재 새소망교회 담임목사 유장춘 (www.yebae.com)

 


 
기사입력: 2017/12/01 [12:15]  최종편집: ⓒ lawnchurc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