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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면적 명성교회 vs. 이면적 명성교회
외부는 표면적 명성교회 비판, 내부는 이면적 명성교회 지지
법과 기독교 (792)
▲     © 법과 기독교

 

 

명성교회는 표면적 명성교회가 있고 이면적 명성교회가 있다. 표면적 명성교회는 외부에서 접근하는 혈연적 방식이고 이면적 명성교회는 내부에서 접근하는 영적인 방식이다.  

 

미국 UCLA에서 한국학교수를 하고 있는 한국교회사 전공인 옥성득교수가 명성교회세습을 저지하지 못하면 한국 개신교는 희망이 없다고 했다. 표면적 명성교회에 촛점을 두고 있다. 옥교수는 세습을 고집하는 동안 그 교회가 몇 천명 수준으로 줄어들도록 비판을 계속해야 한다고 했다. 세습을 명분으로 교회를 파괴해도 된다는 교회파괴의 정당성논리를 펴고 있다. 이는 교회사를 전공한 교수로서 이면적 명성교회보다는 표면적 명성교회로 접근하기 때문이다. 

 

▲     © 법과 기독교

 

손봉호교수 역시 서울대 교수로서 표면적 명성교회의 접근을 하고 있다. 윤리는 보이는 표면적인 것에 국한한다. 

 

▲     © 법과 기독교

 

대부분 신학대 교수나 학생들, 목사들은 개교회를 타켓으로 세습반대입장을 표명하고 있다. 혈연이라는 표면적 세습에 국한하기 때문이다. 그러면 앞서 이미 세습을 마친 광림, 금란, 임마누엘, 왕성, 경서교회 등에 대해서는 왜 이리 침묵하는가? 이미 한국에서 세습을 한 교회들은 350교회가 넘어섰다. 명성교회에 대해서만 세습반대저지운동을 하는 것은 차별성에 기인한다.

 

명성교회에 대해서는 윤리적 접근보다 영적인 접근을 할 필요가 있다. 표면적 세습보다 이면적 세습으로 접근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외부에서 아무리 윤리적 접근을 하여 공중파까지 방송하면서 세습에 대한 문제제기를 하여도 명성교인들이 움직이지 않는 것은 표면적 세습보다 이면적 세습에 관심을 두기 때문이다. 즉 그들은 외부의 비판과 달리 교회에서 김하나목사를 통하여 영적인 신비의 접근을 하고 있는 것이다. 명성교인들은 교회에서 예배참여를 하고 설교를 들을 때마다 하나님의 신비를 느끼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jtbc와 인터뷰를 한 김재훈장로는 한번 명성교회에 와보라는 것이었다.  

 

물떠온 하인들은 알더라

 

명성교회 역시 내부의 집회를 가보면 김삼환목사는 예수를 마치 신도들의 옆에 있어서 느끼고 만질 수 있는 존재인 것처럼 설교를 한다. 그러다 보면 조직폭력배가 집사로 변화되고, 가난한 자가 복을 얻고, 문제가 해결되고, 성령충만하게 되고, 세속에 물든 사람에게 새로운 윤리적 삶을 살게하고, 병든 자가 일어서는 등 성서의 삶을 그대로 재현시키고 있다. 그러기때문에 사람들이 그러한 하나님의 나라를 체험하고자 몰려드는 것이다. 물 떠온 하인들만 포도주의 출처에 대해서 아는 것 처럼 말이다.

 

▲     ©법과 기독교

 

명성교회에 참여한 교인들은 김삼환목사의 부자를 통하여 이면적 하나님의 능력을 체험하는 것이다. 명성교회에 참여한 교인들만 아는 것이다. 아이러니칼하게도 세습을 반대하는 사람들 중에 자신이 개척해서 세운 대형교회의 목사는 거의 없다.  

 

표면적 윤리적 접근

 

명성교회 역시 표면적 윤리적 접근으로만 접근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다. 명성교인들은 외부의 표면성보다는 이면성에 목표를 두고 신앙생활하고 있기 때문이다. 김삼환목사가 명일동 서울승합 버스주차장 근처에 개척을 하여 지금까지 성장한 연유도 이러한 성서사건의 재현과 이면성의 실현에 있다. 양곡교회가 부흥을 한 것도 성서사건의 재현과 표면보다는 이면성을 강조하기 때문이다. 치유하는 교회(김의식목사)가 부흥을 하는 것 역시 윤리와 제도성을 극복한 이면의 강조와 성서사건의 재현에 있다.

 

그러나 성서사건의 재현보다 메세지만 갖고 하는 교회의 부흥은 한계가 있다. 영락교회, 새문안교회 등 전형적인 장로교 스타일만 갖는 교회의 성장은 한계가 있다. 곽선희, 박조준, 이동원목사등 언변에 뛰어난 황금의 입이 아니고서는 장경동목사처럼 아무리 개그설교를 해도 교회성장에는 한계가 있다. 1,000여명-2,000여명까지 는 도달해도 1만명, 2만명, 5만명의 교회로 성장하기는 현실적으로 어렵다. 한소망교회가 성장하는 것도 영적인 이면성의 강조에 있기 때문이다.

 

이면적 영적 접근

 

양곡교회(지용수목사)는 창원변두리에 있어도 신도들이 3,000여명 이상 된다. 지용수목사는 성령의 역사, 이면성의 강조, 성서재현의 역사를 상당히 강조한다.  한 교회가 10만명 되었을 경우 그 교회를 지배하는 메카니즘은 윤리가 아니라 영성이고 표면성이 아니라 이면성이다. 그러므로 명성교회에 대해서 역사적으로, 정치적으로, 윤리적으로, 사회학적으로, 법적으로 접근하는 데는 한계가 있는 것이다. 

 

적어도 1만명 이상의 교회를 지배하는 메커니즘은 제자훈련이나 이론적 말씀이 아니라 이면성에 토대를 둔 영성이다. 광성교회 역시 전성시대를 보면 김창인목사의 체험적 설교가 한 몫을 이루었다. 후임자의 목회가 전임자만큼 되지 않는 것은 영적인 이면성과 성서사건의 재현이 없는 것이다.  영락, 소망, 주안제일 교회등은 교회성장에 한계가 있다. 영의 소리를 느끼기 어려운 교회가 되어 버렸다. 

 

길자연 목사가 한 때 3천명이상의 교세를 확보할 때가 있었다. 길자연 목사는 기도의 사람이었다. 지금도 관절이 많이 아픈 것은 장시간의 기도때문이라고 말을 하고 있다. 한 때 교인수천명이나 1만명 이상의 교회신화를 이룬 사람은 영적인 능력없이는 즉 이면성의 강조없이는 교회성장이 불가능했다. 명성교회도 예외는 아니다. 

 

김삼환목사의 영성이 있고, 항시 신도옆에 예수님이 옆에 있는 것처럼 설교를 하고 삶속에서 성서의 사건을 재현하고 이면성에 촛점을 두니 1만명이상되는 좌석에 새벽부터 앉을 자리가 없는 것이다. 명성교회는 김삼환목사의 영적능력이 이어갈 후임자를 요구하는데 외부 사람들은 영적 접근은 하지 않고 윤리적 접근만 하고 있는 것이다.  즉 이면적 접근하지 않고 표면적 접근만 하고 있다. 명성교회에 대해서도 아무리 윤리적 표면적 접근을 해도 교회가 흔들리지 않는 것은 명성교인들이 이면성을 추구하기 때문이다. 즉 이면적 명성교회이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이기 때문에 보이지 않는 이면에 그리스도의 영이 작용한다.   

 

겉에는 박사학위출신이고 공부를 많이 하고, 총회장이나 노회장등 명문가의 자제인데 영적인 역사가 없으면 교회운영에 한계가 있다. 그러니까 교회는 덩치가 크고 역사가 있지만 이력이 출중한 후임자가 와도 성장을 하지 못하는 것이다. 그래서 교수출신이 목회하는 곳은 바람 잘 날이 없다. 이면적 영성이 아니라 표면적 학력갖고 목회하기 때문이다.

  

교수들은 보이는 윤리와 학력, 지연이나 학연에는 하자가 없는데 보이지 않는 영성이 없는 것이다.  즉 표면적 목사로서 하자가 없는에 이면적 목사는 아닌 것이다. 표면성을 강조하는 목사들은 설교에 파워가 없고, 삶을 변화시키지 못하고, 예수를 느끼게 끔 하지 않고, 성서의 사건의 재현보다는 사건의 열거나 해석에 관심있다. 이면적 영성에 관심이 없거나 실천하기 어려운 목사들 이다. 체험과 능력이라는 이면성이 없는 교회의 성장은 한계가 있다. 이러한 의미에서 명성교회의 선택은 김삼환목사의 영성을 이어갈 이면적 목사를 선택한 것이다. 혈연적 김하나를 선택한 것이 아니라 영성적 김하나를 선택한 것이다.

 

필자는 2013. 2. 27. '법과 기독교'에 '광성문명의 몰락과 명성문명의 미래'(http://lawnchurch.com/sub_read.html?uid=3667&section=sc50&section2=)이라는 제목으로 다음과 같이 글을 쓰면서 김삼환목사는 혈연적 아들보다는 영적인 아들을 승계자로 삼아야 한다고 했다.  

 

"명성교회도 마찬가지이다. 명성문명이 몰락하지 않기 위해서는 스스로 지켜야 한다. 맹종체제의 당회나 주위의 아붓군들에게 의존하지 말고, 교회 자체적으로 백년대계를 이어갈 창조적인 엘리트들을 포진시켜서 교회의 경영진을 구축하고, 대사회적인  언론과 홍보를 유리하게 이끌어 가고, 또 다른 종교적 천재 Post 김삼환을 속히 만들어서 명성의 문명이 몰락하지 않도록 해야할 것이다. 명성을 이끌어갈 수 있는 자로서 아들로 차기 리더로 하든지, 제 3의 인물을 발굴해 내든지 종교적 천재를 만들어 내야 한다.
 
이영훈목사가 조용기목사를 대신할 수 없고, 이철신목사가 박조준목사를 대신할 수 없고, 김지철목사가 곽선희목사를 대신할 수 없듯이, 차세대가 1세대를 잘 대신하는 사람은 없었다. 그나마 오정현목사가 옥한음목사를 잘 대신했는데, 결국 거품이었다. 이문장목사도  김진홍목사를 대신할 수 없었다. 광성문명, 순복음문명, 영락문명, 소망문명, 사랑의 문명이 몰락할 위기에 있다. 명성문명도 몰락하지 않기 위해서는 하나님이 예비한 사람으로서 Post Kim이 필요하다.
 
신뢰가 있어야 하고, 영성이 있어야 하고, 리더십이 있어야 하고, 청중을 끄는 카리스마가 있어야 하고, 창조성이 있어야 하고, 객관성이 있어야 하고 머슴신학을 기초하고 실천할 수 있는 사람이 있어야 한다. 명성교회는 머슴의 설교는 있는데 머슴신학을 기초할 수 있는 사람이 없다."   

 

post Kim 만들어야
 
광야에서도 하나님의 힘으로 살아나고 하나님을 섬길 수 있는 진정한 머슴으로서 살아갈 수 있는 Post Kim을 만들거나 찾아 내어서 어떤 세상의 위압도 견뎌내 명성의 문명의 몰락을 막아야 할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아들은 영적인 세습을 해야 하고, 제 3자는 머슴신학 이상되는 영적인 실천을 해야 할 것이다. 어슬픈 김삼환 흉내내기나 가벼운 영성이나 유모로 사람웃기려 하는 사람 찾지 말고, 김삼환목사의 깊은 영성을 몸소 실천할 수 있는 차세대 리더가 필요한 것이다.
 
그러므로 김삼환목사는 이제 육적인 아들을 세울 것이 아니라 사도 바울이 영적인 아들 디모데를 세우듯이 영적인 아들을 찾아야 할 것이다. 김하나도 영적인 아들이 될 수 있고 제 3자도 영적인 아들이 될 수 있다. 김하나를 영적인 아들로 만들려면 독수리처럼 절벽에서 뛰어내려 죽음을 극복하는 훈련을 시켜야 할 것이다.
 
어설픈 감리교 계열의 드류대학 박사학위 갖고서 장로교에서 리더로 서기는 어렵다. 박사학위 출신자들로서 목회에 성공한 예가 없다. 남이 해놓은 것 갖고서 겨우 유지는 할 수 있다. 김지철, 이수영목사는 서울대 장신대, 유럽박사이다. 창조적 목회자보다 유산을 계승하는 목회자이다. 목회는 학위로 하는 것이 아니라 영성으로 하는 것이다.
[2013. 2. 27. '법과 기독교',  "광성문명의 몰락과 명성문명의 미래"]

 

혈연적 아들보다는 영적인 아들로 선택한 명성교회

 

이 후 김삼환목사는 김하나목사를 영적인 아들로 만들기위해서 새노래 명성교회를 만들어서 그를 담임목사로 하여 훈련시켰다. 신도들은 그가 혈연적 아들로서라기 보다는 영적인 아들로서 준비가 되었다고 판단했다. 현재 명성교회는 김하나목사가 김삼환목사이상 설교를 잘한다고 칭찬을 하고 있고, 그의 영적인 능력에 대해서 대체로 만족해 한다. 명성교인들은 김하나목사의 선택이 김삼환목사의 혈연때문이라기 보다는 그의 영적 능력때문 이라고 말을 한다. 5만명 이상이 그를 지지하는 것은 아들이 아버지 못지 않은 영적 능력이 있다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아들이라고 해서 급이 안되는 목사를 앉혀놓는다면 얼마가지 못한다.   

 

그러므로 명성교회사건에 대해서는 외부에서 사적인, 법적인, 윤리적인, 정서적인 입장만 갖고 접근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신도들이 모인 단체로서 그리스도의 몸이기 때문에 영적 접근이 필요하다. 윤리적, 법적, 사적, 정서적인 입장은 비본질적인 접근에 불과하고 영적 접근이 본질적인 접근일 것이다.  바울은 혈연이나 육적인 것보다 영적인 것을 중시하였다. 즉 표면적인 것보다 이면적인 것을 중시했다. 표면적 유대인보다 이면적 유대인, 육적인 할례보다 이면적인 할례를 중시했다.

 

"대저 표면적 유대인이 유대인이 아니요 표면적 육신의 할례가 할례가 아니라 오직 이면적 유대인이 유대인이며 할례는 마음에 할지니 신령에 있고 의문에 있지 아니한 것이라 그 칭찬이 사람에게서가 아니요 다만 하나님에게서니라" (롬2:28-29)

  

명성교인들이 혈연적인 접근을 한다면 혈연적 아들세습은 어려웠을 것이고 저항에 부닥쳤을 것이다. 명성교인들은 그동안 김하나목사의 설교를 많이 들었을 것이고, 나름대로 저 정도면 김삼환목사의 영성을 이어갈 수 있다고 판단, 73% 이상 지지를 한 것이다. 김하나목사의 설교 역시 김삼환목사의 영향을 받아 상당히 실제적으로 영적인 것임을 알 수 있다.  명성교인들은 김삼환목사와 김하나목사의 설교를 즐기면서 나름대로 교회안에서는 영적인 잔치를 하고 있는데 교회밖에서는 윤리적인 잔치를 하고 있는 것에 대해 의아해 하고 있는 것이다.

  

옥성득교수는 서울대 영문학과를 나오고 미국에서 한국교회사를 전공하여 박사학위를 받았고 미국대학교의 한국학교수로서 있지만 혈연세습을 빌미로 그리스도의 몸인 영적인 공동체인 교회를 수천명선으로 파괴시키려고 하는 것은 이면적 접근을 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명성교인들은 김하나목사 설교가 영적으로 약하다면 외부에서 비판하기 전에 먼저 김삼환목사와 당회를 비판하고 아들목사를 내칠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새벽마다 주일마다 김하나목사가 김삼환목사의 설교보다 더 좋다며 김하나목사의 설교를 즐기고 있다. 교단헌법 1조는 양심의 자유로서 영적인 자유이기도 하다.  

 

교인들은 1조의 영적인 자유(양심의 자유)와 2조의 교회의 자유를 갖고서 자신들이 원하는 영적인 목사를 선택을 했다. 김하나목사와 명성교인들이 결혼하고 이혼하는 것은 당사자간의 문제이다.  Top 스타 정윤희와 이영애는 이미 한번 이혼한 남자와 결혼을 해서 팬들에게 실망감을 갖게 했다. 그렇다고 해서 그들에게 왜 그 남자를 선택했느냐고 이혼하라고 할 수 있느냐는 것이다. 

  

명성교회 역시 교단법적으로는 하나의 개체교회에 불과하고 국가적으로 이슈가 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개교회의 문제는 개교회가 알아서 해야 한다. 명성교인들과 아들목사가 서로 좋아 영적으로 결혼했는데 제 3자가 이를 불륜이라고 비판해서 이혼하라고 할 수 있느냐는 것이다. 잘못하다가는 지나치게 제3자의 개입일 수 있다. 국가나 공중파방송이 지나치게 개입하면 종교자유의 침해가 될 수 있다. 

  

그러므로 명성교회를 허무는 전략을 구사한다면 그것은 사단이 하는 전략일 것이다. 명성교회의 문제는 윤리적, 정치적, 사회학적, 정서적, 역사적으로 접근할 것이 아니라 영적으로 접근해야 할 것이다. 명성교인들이 김삼환목사의 혈연적 아들이 아니라 영적인 아들로 보고 김하나목사를 선택했다면 우리는 그래도 이혼을 하라고 해야 하겠는가? 그들이 원하는 목사를 그들이 선택할 권리가 없다면 이는 자유 민주주의가 아니라 독재공화국일 것이다. 기독교인들은 명성교회에 대해 표면적 명성교회보다 이면적 명성교회로 접근할 필요가 있다.     

 

 

 

 


 
기사입력: 2017/12/11 [12:02]  최종편집: ⓒ lawnchurc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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