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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장통합 총회재판국, 솔로몬의 명판결 필요
실체적 진실밝히기보다 화해추구해야
법과 기독교 (671)

 

법은 무엇인가? 법은 억울한 자들의 권리를 회복시켜주거나 선악의 시시비비를 가려주는 일종의 기준이다. 그러나 때때로 법이 선한 사람을 악인으로 만들고 악인을 선인으로 만들기도 한다. 신명시 1:17절은 "재판은 하나님께 속한 것인즉 너희는 재판할 때에 외모를 보지 말고 귀천을 차별 없이 듣고 사람의 낯을 두려워하지 말 것이며 스스로 결단하기 어려운 일이 있거든 내게로 돌리라"고 재판장들은 공평성을 추구하라고 말을 한다. 

 

그러나 공평성을 추구하는 일은 쉽지 않다. 100% 완전한 증거가 없고, 재판장들은 자유심증주의에 따라 어느정도 주관성을  갖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판사들은 재판을 하는 당일에도 특정사건에 관하여서 원고의 편에 서야할 지, 피고의 편에 서야할지를 모른다고 한다.  

 

그런데다가 과거나 현재에도 완벽한 증거를 갖고 하는 재판은 많지 않고, 판사는 약간 유리한 측을 선택하는 수 밖에 없다. 즉 51: 49로 존재하는 경우가 많은 것이다. 그러다 보니 억울한 사람들이 많이 배출된다. 더군다나 증거를 왜곡하거나 정치적 재판을 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성서의 재판은 누명과 정치적 재판의 역사

 

성서의 재판과정을 보면 누명과 정치적 재판의 역사이다. 요셉의 재판을 보면 보디발 아내라는 당사자의 입장만 중시하여 재판을 하여 요셉이 옥살이를 하게된다. 이것은 한국도 마찬가지이다. 법정에 가면 실체적 진실 상관없이 대부분 아동이나 여성의 입장만 중시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솔로몬의 재판은 실체적 진실밝히기의 명판결을 보여준다. 하지만 예수에 대한 재판을 보면 빌라도는 분명히 예수가 죄가 없다는 실체적 진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왜곡된 재판을 한다.

 

지금까지 빌라도는 욕을 먹고 있다. 빌라도는 하나님이 아니라 사람들의 눈치를 보고 재판을 했기 때문이다. 자신도 죄가 없음을 잘 알면서도 죄가 있다고  정치적 재판을 한다. 바울 역시 이교도라는 교리적 죄명을 안고 로마법정에서 사형을 선고받는다. 억울하게 이교를 전파했다는 교리적 누명을 쓰고 사형선고를 당한다. 오늘날이나 옛날이나 다를 것이 없다. 기득권층들은 교리적 재판을 해서 약자들을 죽이고 있다.

 

요셉의 재판은 억울한 누명 재판, 솔로몬의 재판은 실체적 진실 밝히기 재판, 예수의 재판은 정치적 재판, 바울 의 재판은 교리적 마녀사냥 재판이었다. 이처럼 성서재판의 역사는 누명과 정치적 재판의 역사 이다. 그만큼 재판은 정상적인 재판이 거의 없다 시피하다. 반드시 죄를 물어야 할 사람인데  변호사를 잘 고용하거나 정치적 로비를 하여 무죄를 받기도하고, 변호사를 고용하지 못하는 사람은 실체적 진실과 상관없이 피해를 당하는 경우가 많이 있다.  더군다나 교단은 주로 윤리와 교리, 권징, 행정에 대한 재판이 주를 이룬다. 대부분 교단재판국 관계자들이 법을 전공하지 않은 상태에서 재판을 하기 때문에 정치성, 비전문성, 비법리성을 띠게 된다.

 

그러다 보니 재판의 시시비비보다 화해를 추구하는 것이 명재판이 될 수 있다. 실체적 진실 파헤치기 보다는 실체적 진실을 잠간 뒤로하고 우선 양측 화해를 추구하게끔 하는 것도 좋은 재판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화해만큼 더 나은 판결은 없다. 화해는 양측이 윈윈할 수 있도록 하는 재판제도의 한 부분이다. 법으로만 판결을 내기 보다는 서로의 입장을 조금씩 양보해서 누가 입을는지 모르는 상처를 최소화 하는 것이다.

 

나수루딘 판사

 

이슬람교에 물라 나수루딘(Mulla Nasrudin)이라는 판사가 있었다. 나수루딘이 재판을 하는데 원고가 너무나도 설득적으로 발언을 잘 하자, 재판국장은 "원고, 네가 옳다"고 했다. 재판국 서기가 피고의 말을 듣기 전에는 판단해서는 안된다고 했다. 이 말을 받아들여 나수루딘은 피고의 주장을 듣고 나자  "피고, 네가 옳다"고 했다. 그러자 재판국 서기가 일어나서 "경외하는 재판국장님, 양쪽이 모두 옳을 수는 없습니다"라고 말하자, 재판국장은 "네 말도 옳다"고 했다. 

 

이 재판에서 양쪽 다 옳은 것은 불가능하다. 누가 옳은가? 해결책은 재판국장이 원. 피고 양쪽의 명예와 체면을 살려주고 그렇게 함으로서 그들간의 올바른 관계를 회복시켜주기를 의도했던 것이다. 결국 원피고 화해로 끝났다. 누명과 정치적 비법리적 재판을 막기위한 한가지 방법 중의 하나는 화해 이다. 재판국이 직접 판단하지 못하도록 하는 것이다. 형사재판이나 민사재판은 화해가 우선되면 한 쪽이 패소할 경우 받는 폐회가 약화된다.

 

원주제일, 서울교회, 안강제일교회 화해 해야

 

원주제일교회와 서울장로교회는 화해를 해야 한다. 원주제일교회는 오인근목사측의 명예를 중시하고, 오인근목사측은 교인들 다수가 반대를 하고 있는 만큼, 양측이 화해를 하여 상생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오인근목사도 여기에 적극 임해야 한다.

 

박노철목사측 역시 서울교회측과 화해를 하여 양측이 윈윈하도록 해야 한다. 이종윤목사에 대한 명예도 존중해주고, 박노철목사에 대한 명예도 존중해주어야 할 것이다. 광성교회사건 역시 13년만에 양측이 화해를 하였다.

 

안강제일교회 역시 양측이 화해를 해야 한다. 서로 무리하게 요구하지 말고 또한 너무 인색하게 하지말고 하나님나라를 확립하는 차원에서 서로 윈윈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러한 의미에서 총회재판국은 솔로몬의 재판처럼 양측이 윈윈할 수 있도록 가장 지혜로운 재판을 해야 할 것이다.  현재 총회재판국에 요구되는 것은 솔로몬의 지혜로운 명판결 이다. 그 어느때보다 남북화해가 중요한 만큼, 실체적 진실밝히기 보다 분쟁당사자의 화해를 잘 이끌어내는 것도 솔로몬의 명판결이 아닐까? 화해.조정도 판결의 효력이 있기 때문이다.     


 
기사입력: 2017/12/25 [23:55]  최종편집: ⓒ lawnchurc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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