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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요로 생명력을 상실한 교회(버가모 교회)
요한계시록 2장 12절 ~ 17절
유장춘 (128)

 

▲ 유장춘 목사     ©법과 기독교

○ 하나님께서는 분명한 철학 · 의지를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을 통해서 역사를 이끌어 가십니다. 사람은 환경에 영향을 받도록 되어있지만, 하나님께서는 환경이 인도하는데로 살아가는 삶을 거부하고,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가치를 지키며 살아가길 원하십니다. 버가모교회에 주신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의 음성을 들으시기를 축복합니다.

 

○ 요한계시록은 소아시아에 있는 7교회에 보낸 편지입니다. 초대교회에 있었던 각각교회의 특징이, 어느 때나 있고, 교회사적으로 나누어 보면 차례대로 특징이 있습니다. 에베소교회의 특징을 교회사로 말씀드리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으심과 부활과 승천, 그리고 성령강림은 사도들의 신앙을 뜨겁게 달구었고, 초대교인들의 신앙을 활화산처럼 터지게 하였습니다. 그래서 교회는 세상적인 고난의 용광로 속에서도 확장되었고, 부흥되었습니다.

 

에베소교회에는 훌륭한 목회자들이 목회를 하여, 지적으로는 잘 훈련되었습니다. 그러나 영적인 열정이 사라진 것처럼 초대교회도 형식은 남아 있지만, 첫사랑이 식었습니다. 주님을 향한 열정이 식어버리자, 하나님께서는 핍박을 통해서 그들을 새롭게 하셨습니다.

 

그 현상이 서머나 교회의 현상으로 나타났습니다. 역사적으로 10명의 황제들이 교회를 핍박하였습니다. 박해를 받을 때 성도들은 카타콤이라 부르는 지하로 들어가면서도 신앙을 지켰고 세상의 고난을 감당했습니다. 고난 속에서도 기도와 사랑으로 모든 것을 견디어서 마침내 신앙으로 로마를 정복했습니다. 핍박하던 로마가 기독교를 종교로 인정했고, 후에는 국교로 받아들였습니다. 교회가 안정되고, 오리려 각종 혜택을 누리면서 버가모 교회현상으로 나타났습니다.

 

 

 

기독교와 콘스탄틴

 

 

 

로마군대는 제국으로 움직이기 보다는 군단장이나 총독에게 충성을 바치는 풍조이어서 몇 개의 군단장이 힘을 합하여 로마를 공격하는 일이 빈번하게 일어났습니다. 혼란이 계속되다가 서로마 지역에서 콘스탄티누스와 막센티우스의 장군들을 무찌르고 이탈리아 본토로 진입하였습니다.

 

이때 콘스탄티누스가 환상을 보았고, 꿈에서 본 십자가를 제국의 깃발로 사용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이 상징은 그리스 알파벳 중 ‘카이(Ⅹ)’와 ‘로(Ρ)’를 합친 것이며, 그리스 알파벳으로 ‘그리스도’란 단어를 쓸 때 앞의 두 글자입니다.

 

전쟁에서 승리한 콘스탄틴의 영향으로 기독교인들은 빼앗겼던 시민권을 되찾고, 몰수당했던 교회의 재산을 되찾고, 돌려받은 재산으로 많은 예배당을 세웠습니다. 콘스탄티누스는 교회의 감독들에게 큰 호의를 베풀었고, 궁으로 초대하기도 했습니다. 심지어 교리문제를 정리하기 위해서 황제가 직접주도하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나 콘스탄틴은 기독교를 후원하면서도 자기 아버지가 믿었던 페르시아의 태양신 미트라를 섬겼습니다. 기독교를 공인한 후에도 그가 발행한 화폐에는 미트라 신(神)의 초상을 조각하고 ‘무적의 태양, 나의 보호자’라고 써놓았습니다. 그의 영향으로 미트라 신앙의 의식이나 제도, 관습, 교리 등이 초기 기독교에 대부분 수용되었습니다. 결국 교회는 안정을 얻는 대가로 혼합주의 신앙의 영향을 받게 된 것입니다.

 

B. K. 카이퍼는 기독교 공인의 부정적 결과에 대하여 “교회가 양(量)에서는 얻었으나 질(質)에서는 잃었던 것입니다. 313년에 콘스탄틴의 칙령은 교회에 힘센 타락의 홍수 문을 열었던 것이다.” 라고 평가하였습니다.

 

콘스탄틴에 의해 교권제도가 조직되면서 그리스도가 교회의 머리가 아니라 황제가 교회의 머리로 등장했고, 교회는 국가의 시녀가 되었습니다. 이러한 중앙집권적 교권제도는 카톨릭교회로 발전할 수 있는 발판이 되었고. 실제로 콘스탄틴에 의해 만들어진 교권제도는 카톨릭 조직으로 급속도로 발전해갔습니다.

 

 

 

본문말씀

 

 

 

버가모란 뜻이 이중결혼으로 모든 상황을 충분하고도 넉넉하게 짐작할 수 있습니다. 버가모는 소아시아의 수도이고 로마의 정치와 학문 그리고 이상신 숭배 중심지로서 학문의 중심지입니다.

 

버가모에 있는 신전은 이집트의 세리피스 신전, 로마황제 신전, 살아있는 독사를 갖다 놓고 독사에게 절하는 제우스 신전, 영웅이 죽으면 신으로 섬기는 헤룬 신전, 연극을 시작하기 전에 동물을 잡아 제사를 지내는 디오니스 신전, 수태와 예술과 전쟁의 신으로 섬기는 아테네 신전, 오곡과 초목을 풍성하게 하여 준다고 믿는 데메테르 신전, 치료의 신으로 믿는 아스클레피온(Asclepion)의 신전이 있었고, 이곳에서 ‘의학의 아버지’라 불리는 히포크라테스가 이곳에서 활동했습니다. 무엇보다 바벨론종교의 본산지였습니다.

 

 

 

버가모 교회 칭찬

 

 

 

『네가 어디 사는 것을 [내가] 아노니 거기는 사단의 위가 있는 데라』 직설법을 사용하여 주님께서 사탄의 소굴에서 신앙을 지켜가는 버가모교회의 눈물겨운 노력을 확실하게 아신다고 하셨고, 이미 주님께서 모든 영적인 상황과 성도들이 주님의 나라를 위해 믿음을 지키고 있는 것을 완전하게 아신다고 하셨습니다. 『네가 내 이름을 굳게 잡아서 내 충성된 증인 안디바가 너희 가운데 곧 사단의 거하는 곳에서 죽임을 당할 때에도 나를 믿는 믿음을 저버리지 아니하였도다』는 말씀을 통해서 녹가마에 불을 달구고 그 속에 넣으므로 순교한 지도자의 모범을 칭찬하여 주셨습니다.

 

 

 

버가모교회 책망

 

 

 

『그러나 네게 두어 가지 책망할 것이 있나니 거기 네게 발람의 교훈을 지키는 자들이 있도다. 발람이 발락을 가르쳐 이스라엘 앞에 올무를 놓아 우상의 제물을 먹게 하였고 또 행음하게 하였느니라. 이와 같이 네게도 니골라당의 교훈을 지키는 자들이 있도다.』

 

버가모교회가 책망받을 만한 일은 그 교회에 발람의 교훈을 지키는 자들이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발람의 교훈은 발람이 발락에게 하나님의 도움으로 기적적인 일들을 벌이고 있는 이스라엘을 공격하는 방법을 알려 주었습니다.

 

광야에서 거칠어진 여인들만 보던 이스라엘 남자들이 깨끗한 피부와 옷으로 꾸민 모압여인들이 현란한 춤과 눈웃음으로 유혹하자, 그녀들과 행음하며 그 신들에게 제사한 제물을 함께 먹었기 때문에 하나님으로부터 진노를 당하여 심판을 받아 하루에 2-3천명이 죽었습니다.(민25:1-3)

 

버가모교회는 니골라당의 교훈을 받아들였습니다. 니골라는 예수님을 따르며 복음을 듣고 열심히 섬겨서 일곱집사로 뽑혀서 안수까지 받았습니다.

 

사도행전 9장에 기록된 박해가 있을 때 은둔하면서 정립한 교리임에도 예수님이 미워하는 교리를 만든 것입니다.

 

니골라 교리는 하나님앞에서 영만 구원을 받으므로, 몸은 땅에 묻혀 썩기 때문에 육신은 마음대로 즐겨도 되고, 육신의 정욕은 억제하지 않아도 되며, 먹고 마셔도 영만 순수하면 된다고 주장하였습니다. 에베소 교회는 니골라 당의 교훈을 따르거나, 타협하지 아니하고 오히려 미워했습니다.

 

이와는 반대로 버가모 교회 신자들 중에서는 니골라의 주장을 받아들인 것입니다. 이러한 악습을 안디바 감독이 책망하자, 그들은 자기들의 죄악을 회개할 생각은 아니하고, 로마 정부에 안디바 감독을 고발했습니다.

 

 

 

교 훈

 

 

 

주님께서는 버가모 교회에 “좌우에 날선 검을 가진 이”로 나타나셨습니다. ‘좌우에 날선 검’은 그의 예리한 말씀, 즉 사람들의 죄를 지적하여 영혼을 회개시키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히브리서4:12)하나님의 말씀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감찰하나니.』

 

여러분! 주님께서는 니골라당의 교훈을 받아들인 버거모교회가 진리와 비진리를 구분하는 기준이십니다.

 

콘스탄틴이 기독교를 공인한 이후 세상적인 안정과 풍요보다 더 우선해야 할 진리는 바로 주님 자신인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우리시대에도 진리와 비진리를 구분하는 기준이고, 세상의 안정과 풍요보다 더 우선해야 할 진리입니다. 할렐루야!

 

주님께서는 버가모 교회에 회개를 촉구하셨고, 콘스탄틴이후의 교회에도 회개를 촉구하셨고, 오늘날의 교회에도 회개를 촉구하십니다. 만약 회개하지 아니하면 주님이 직접 개입하시겠다고 말씀하시고 계십니다.

 

 

 

약 속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감추었던 만나를 주고 또 흰 돌을 줄 터인데 그 돌 위에 새 이름을 기록한 것이 있나니 받는 자 밖에는 그 이름을 알 사람이 없느니라.』

 

성령의 음성을 들고 비신앙을 버리고, 세상의 풍요보다 주님을 더 우선하면 받은 자만이 아는 신비한 하늘양식 만나를 먹게 됩니다. 주님은 경기장에서 승자와 재판에서 무죄를 선고할 때 준 흰돌을 주겠다고 하셨습니다. 여러분! 오늘날 우리는 너무 많은 것을 누리고 있습니다.

 

신앙 때문에 핍박받는 일이 없습니다. 그리고 세상적으로 풍요로운 환경을 누리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우리는 하나님과 세상을 다 가지려고 하고 있습니다.

 

2018년 시작과 함께 종교인과세가 실행되었습니다. 내용을 살펴보니 최소한 충격으로 시작하려고 한다는 것을 알 수는 있었습니다. 그러나 종교와 청치는 분리되어야 합니다. 종교와 정치의 구별은 헌법이고, 피를 흘려서 얻어진 것입니다. 그런데 조금만 법령을 바꾸면 국가가 교회를 완전히 통제할 수도 있다고 생각되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을 최고로 섬겨야 합니다. 그런데 돈을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는 경향이 점점 강해지는 현상이 드러나고 있습니다. 여러분! 진리와 비진리는 크다고 진리가 아닙니다. 세상기준으로 성공했다고 진리가 아니라는 것을 명심하시기를 바랍니다.

 

 

 

분당소재 새소망교회 담임목사 유장춘 (www.yebae.com)

 


 
기사입력: 2018/01/12 [16:41]  최종편집: ⓒ lawnchurch